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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샤넬 화장품의 얼굴 길고 긴 금발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모델 커스티 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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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9월 4일 영국 에이셔에서 태어난 길고 긴 금발이 트레이드마크인 커스티 흄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모델이었습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의 그녀는 180센티미터의 키를 소유한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미인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파가니즘 커스틴 흄 그녀는 14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친척들 집을 오가며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그러한 가운데 경제적 안정과 행운이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17살에 모델 에이전시에 캐스팅 되어 계약을 맺었고 19살에 유명 사진 작가에게 발견되면서 찬란한 모델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예술학교를 물색하던 중 혹은 입학 예정을 앞두고 생긴 일입니다. 커스티 흄은 1997년 캘빈 클라인의 모델 도노반 레이치 주니어와 결혼하여 딸 바이올렛을 낳았습니다. 1999년에는 한창 일을 해야 할 스물 세 살 나이에 은퇴 선언을 하면서 모델계의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무대위만 걷지 않았을 뿐 광고나 화보 촬영은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사실 은퇴라고도 할 수 없었죠. 예술가의 피  뉴욕에 있는 예술 대학에 다니며 못다 이룬 꿈을 이루었습니다. 2004년에 예쁜 딸 바이올렛을 낳았지만 그녀는 2011년에 남편과 별거에 들어갔고 2014년에 이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46세에 다시 패션업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번 운명적 인 사랑을 찾았고 2021년 6월 초콜릿 회사 거물 프레드릭 실링과 달콤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90년대 초반 대중에게 인상적인 매력을 보여준 커스티 흄은 특히 샤넬 화장품 및 알뤼르 향수를 대표하는 모델로도 유명하였는데요. 길고 밝은 금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그녀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가운데 살짝 홈이 파인 두툼한 아랫 입술일 것입니다.  독특한 아랫입술 신디 크로포드가 입술 위의 점으로 구별이 잘 된다면 커스티 흄은 독특한 아랫 입술로 인해 개성이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죠. 당시에는 브리지트 홀을 비롯해

도날트 트럼프의 전 여친이자 억만장자와 결혼한 카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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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후반에 데뷔하여 90년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 중 한명이던 카라영은 1969년 12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 스코틀랜드 혈통이며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미묘하게 아프리칸 분위기가 흐릅니다. 올 아메리칸 룩을 정립한 카라영 1987년에 고향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뷔한 카라영은 1년 후 뉴욕으로 이사하면서 엘리트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뚜렷하고 신선하고 매력적인 마스크의 그녀는 올 아메리칸 룩의 이상을 정립한 카라영은 패션 무대보다는 주요 화장품 시장의 모델로 활약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모델로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남겼습니다. 물론 완벽하고 섹시한 몸매로 빅토리아 시크릿 초기 모델이 되기도 했고요. 도날드 트럼프와 교제 후 억만장자와 결혼 1990년대 중반 사진작가 산테 오라치오와 첫 결혼을 하였고 4년 후에 이혼하였습니다. 그리고 1995에는 도날드 트럼프와 데이트를 하였습니다. 도날드 트럼프가 그의 두 번째 와이프 말라 메이플스와 이혼한 후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그가 자신의 타입이 아니라 그를 좋아하리란 생각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재미있고 정말로 좋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했습니다.  카라영에게 미모는 엄마를 닮고 영특함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해 준 트럼프와 카라영은  약 2년 반 동안 연애를 하였지만 트럼프는 멜라니아와 결혼하였고 카라영은  2005년에 그리스의 해운업 거물 억만장자 피터 조지오풀로스와 결혼하여 두 아들 닉과 디노를  낳아 잘 살고 있습니다.  헤어 제품 브랜드 사업 및 살롱을 소유한 그녀는 여전히 바쁘게 지내는 가운데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노력을 하며 남편과 함께 있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에 큰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모델계 미의 기준을 바꿔버린 슈퍼모델 알렉 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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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알렉 웩으로 한국 같으면 놀림 받기 딱 좋았던 그녀는 19977년 4월 16일 아프리카 수단에서 태어난 딩카족 출신 모델입니다. 역대 가장 성공한 흑인 모델 중 한명이기도 한 그녀는 남다른 개인사가 있지만 그런 것보다 이렇게 독특한 생김새로 톱 모델이 된 것도 신기하고, 그녀 덕분에 미의 기준이 바뀐 남다른 공로가 있다고 합니다. 수단 딩카족 출신의 알렉 웩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형제가 8명이나 있는 그녀는 내전 때문에 일곱 살 때 가족과 총알을 피하며 집안에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 여자 아이가 집밖에 나간다는 것은 강간이나 납치 그리고 죽음을 의미하는 거였습니다.  그녀 가족은 집마당에서 기른 야채와 곡물 그리고 땅콩 등을 먹고 살아 남았고 1991년 열 네살때 난민이 되어 언니와 함께 영국의 난민 보호 시설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2년 후에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8살에 영국에서 모델 캐스팅 영국에서 살면서 4년 후 18살의 나이에 그녀의 남다른 외모는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포드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곧바로 밀라노와 뉴욕 패션 위크를 누볐습니다. 이만을 비롯해서 나오미 켐벨이나 타이라 뱅크스 등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흑인 모델들이 활약한 가운데 알렉 웩은 다소 갸우뚱거리게 하는 미모이긴 했습니다. 피부색도 이들보다 훨씬 까맸고 얼굴은 보시다시피 미인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요.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엘르 표지 모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1997년에는 올해의 모델이 될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아프리칸 출신 모델로는 처음으로 엘르 표지를 장식하였고요.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큰 활약은 개성있게 생긴 모델이 활약하는 데 물꼬를 터 준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90년대 중반까지 얼굴과 몸매가 완벽한 바비인형같은 모델들이 득세를 이뤘다면 알렉웩은 그에 비해 돌연변이같은 존재였습니다. 70년대 개성있는 마스크의 톱 모델 그레이스 존스하고도 다른 느낌의 어글리 모델이었기 때

세상 제일 열정적으로 산 슈퍼모델 수잔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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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잔 홈즈는 1972년 5월 2일 오하이오주 볼링 그린에서 엘리트 부모님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일곱 살 때 이혼하였고 엄마를 따라 서쪽 샌디애고로 이주합니다.  엘리트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수잔 홈즈 어릴 적부터 남다른 미모와 재능으로 눈에 띄었던 수잔은 샌디에고 고등학교 시절로 맹활약하였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완전 인싸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식당에서 조디 포스터 옆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다가 한 패션사진작가의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수잔에게 가서 모델이냐고 물었고 아니라고 하니 곧바로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곧바로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게 됩니다. 그녀 나이 17살이었습니다.  그렇게 패션 무대 및 각종 광고 모델을 휩쓸며 잘 나가던 그녀는 1997년 자신만의 수영복 브랜드를 런칭하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케이트 허드슨, 하이디 클룸, 스텔라 매카트니 등을 포함한 유명인들이 입었고 사업은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건스앤로지스의 멤버 더프 맥케이언과 운명적인 사랑과 결혼 또한, 왕년에 잘나가던 헤드밴드로 유명한 건스앤로지스의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과 결혼하여 현재까지 알콩달콩 매우 잘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업계에서 아주 이례적인 사례로 꼽는데요. 보통 록가수와 결혼하면 결혼 파탄은 기본인데 이들 부부는 일탈없이 첫눈에 사랑에 빠진 느낌 그대로 여전히 서로 넘치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 부부와 비슷하게 야스민 가우리 커플이 있긴 하지만 왠지 수잔 홈즈가 조금 더 대단해 보이네요. 음악가와 모델은 비교적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이들 부부의 행복 비결에는 여행도 포함되는데요. 3년 동안 50개국을 돌아다닐 정도로 에너지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다재다능 장착 게다가 그녀는 부모를 닮아 머리가 좋은 것인지 재능이 넘쳐 2019년에는 소설 벨벳 로즈를 발간하여 베스트 셀러로 만들었고요. 그것도 아마존과 반스 앤 노블 서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하고 건강한 섹시함을 보여준 슈퍼모델 신디 크로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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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2월 20일 미국 일리노이주 디캘브에서 신디 크로포드는 1980년대에 데뷔하여 현재까지도 잘나가고 있는 슈퍼모델 오브 슈퍼모델입니다. 그녀가 슈퍼모델이란 첫 타이틀을 거머쥔 모델은 아닐지 몰라도 슈퍼모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최초의 모델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슈퍼모델  슈퍼모델의 전성기를 이끄는데 최선봉에 섰던 그녀는 얼굴은 전형적인 미국 미인에 속했고 오히려 평범에 가까웠으나 입술 위의 탁월한 점 하나의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일리노이 노스웨스턴 공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고도 모델로 돈을 버는 게 수지타산에 맞다고 결정하여 대학을 가지 않은 그녀의 선택 또한 탁월했고요. 관계자들이 그녀에게 점을 빼라고 한 것도 말을 듣지 않고 고수한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신디 크로포드는 슈퍼모델로 슈퍼리치 반열에 오른데다 그녀의 자식들도 대를 이어 슈퍼모델로 잘 나가고 있는데요. 집안 버프없이 오로지 출중한 외모 그리고 뛰어난 두뇌로 업계를 평정한 경이로운 기록 보유자입니다. 모델이 된 계기 신디의 아버지는 전기 기사였고 어머니는 은행 창구 직원이었습니다. 그녀는 1남 3녀 중 둘째였고요. 빠듯한 집안 환경에 방학 때 동네 옥수수 농장에서 옥수수를 분해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 전문가에게 발견되어 엘리트 모델 대회에 출전한 후 우승을 하였고 그길로 모델 일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녀가 모델이 되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공대 교수나 화학자로도 명성을 얻었으리라 확신하지만요. 1986년 뉴욕으로 이사와 본격적인 모델 활동을 하면서 당시에 가장 잘 나가던 슈퍼모델 지아 캘린지를 닮았다고 해서 베이비 지아란 별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베이비 지아로 시작한 신디 신디크로포드는 남다른 지성미와 남다른 체격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뭔가 여리여리한 몸매가 주를 이루던 업계에서 신디 크로포드는 건강함을 넘어 건장한 체구를 자랑했는데요. 근육질의 탄탄한 바디가 오히려

고급스러움을 갖춘 모델 출신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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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아내이자 영부인이었던 멜라니아 트럼프는 패션 모델 출신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유명하고 잘 나갔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델 출신 답게 출중한 외모인데다 카를라 브루니에 이어 모델 출신 영부인으로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슬로베니아 태생의 미국 영부인 멜라니아는 1970년 4월 26일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인 슬로베니아의 노보 메스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국영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대리점을 관리하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세브니카의 아동복 제조업체에서 패턴 메이커로 일했습니다. 그녀의 형제들로는 아버지가 첫 번째 결혼으로 생긴 이복 언니 이네스가 있습니다. 그녀가 태어난 나라 분위기도 그랬지만 그녀는 비교적 소박한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운 가정에서 자랐고 멋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부모로부터 교육과 열심히 일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디자인 관련 고교를 졸업한 그녀는 대학에서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하다 1년 후 중퇴하였습니다. 아동 모델에서 패션 모델 멜라니아는 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다섯 살 때부터 아동 모델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동복 패션쇼 등에도 참여했었고요. 그러면서 16살에 본격적으로 패션 모델 일을 하게 되는데요. 18살 무렵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모델 에이전시과 계약을 맺게 됩니다. 1992년 나름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고 1995년 도날드 트럼프 친구를 만나 그의 주도로 미국 진출을 꾀하게 됩니다.  1996년 멜라니아는 맨하탄으로 이사하였고 남성 패션지 맥스 1월호에서 다소 선정적인 포즈로 화보 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98년 멜라니아는 당시 부동산 거물 도널드 트럼프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두 번째 아내 마라 메이플스와 이혼 소송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이혼은 1999년에 끝이 났습니다. 섹스 어필한 이미지의 모델 그러나 고급스러운 멜라니아는 뭔가 패셔너블한 이미지보다는 섹

잘 나가던 슈퍼모델에서 배우로 성공한 레베카 로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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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해서도 성공한 레베카 로미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80센티 미터의 훤칠한 키에 아름다운 외모로 91년에 데뷔한 그녀는 잘 나가는 슈퍼모델 중 한명이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배우로도 성공하였는데요. 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녀가 바로 마블 시리즈 엑스맨의 그녀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금발의 거인  레베카 로미진은 1972년 11월 6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네덜란드 태생의 그녀 아버지는 맞춤형 가구제작자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영어 학원 강사이자 관련 교과서 저자입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공연 예술을 좋아했고 소질이 있어서 관련 활동을 많이 해왔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합창단에서 노래도 하고 학교 뮤지컬 배우는 물론 끼를 맘껏 발휘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십대 초반에는 척추측만증을 앓아 지속적인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일종의 성장통이었던 걸까요? 아픈 덕분인 것인지 그녀의 키는 180센티미터까지 자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0년 버클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의 산타 크루즈 대학에 들어가 음악 전공으로 가수가 될 것 같았으나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모델의 길을 가기로 합니다. 그녀는 파리로 가서 빠르게 모델로서 성공적인 길을 갔고 각종 표지 모델은 물론 브랜드를 대표하는 광고 모델이 되었습니다. 사랑과 결혼 그녀의 빠른 성공과 함께 연애 생활도 불꽃처럼 타올랐는데요. 1994년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서 당시 시트콤 풀하우스의 스타 존 스태모스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1997년에 결혼하였습니다. 그녀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습니다. 핫한 선남선녀의 커플로 세상의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이들의 관계는 10년 만에 끝이 났습니다. 일과 사랑에 관해 남다른 성공을 한 레베카 로미진이었지만 10년 사이에 세상은 그녀에 대한 관심이 시들어짐을 깨닫게 되었고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배우로 제 2의 인생 그리고 그녀는 배우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녀의 첫 연기 시작은 당대 최고 인기

모델이 되려고 16살에 가출한 슈퍼모델 일레인 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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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모델 일레인 어윈은 1969년 8월 26일 미국 펜실베니아 길버트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일찍부터 모델을 꿈꾸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6살에 집을 나갔습니다. 그녀의 가족관계에 대한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는 것을 보면 단순히 모델 생활을 하기 위해 집을 나온 것 같진 않고요.  나름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모델이 되고 싶다고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운 좋게도 1985년 중요한 포토그래퍼 등의 눈에 띄게 되고 세븐틴 잡지에 등장한 후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90년대 초반을 장악한 패션 모델 일레인 어윈 1989년에는 유명 음악가들의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하면서 그녀의 매력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화장품 알메이와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을 대표하는 광고 모델이 되었으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및 런어웨이에서도 남다른 미모를 과시하였습니다. 타티아나 파티츠와 친자매가 아닌가 할 정도로 꼭 닮은 외모이기도 한데요. 그래서인지 둘이서 함께 촬영한 화보도 적잖게 보입니다. 타티아나 파티츠와 더불어 카렌 뮐더 등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는 이러한 마스크가 대세였던 것 같습니다. 모델로도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2004년에는 민주당 대표로 나온 오바마의 당선을 위해 열렬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의 대규모 대표를 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뭘 알고 지지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요. 그녀가 오바마를 지지한 이유는 젊은 청년들이 불필요한 전쟁으로 신체 일부를 잃는 것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였다고 합니다. 유명 음악가 존멜런캠프와 결혼과 이혼 1992년 그녀 나이 스물세 살에 음악가 존 멜런캠프와 결혼하여 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들은 2010년 12월 결혼 18년 만에 결별한다고 발표했지만 아이 양육을 위해 둘 다 인디애나에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해 그들의 이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또한, 존멜런캠프는 한국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