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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다재다능을 겸비한 빨간머리 고전배우 모린 오하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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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를 풍미한 배우 오하라 모린은 1920년 8월 17일 아일랜드의 카운티 더블린 라넬라의 어퍼 비치우드 애비뉴 32번지에서 모린 피츠시먼스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급 의류 회사를 경영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읠 디자이너 및 배우와 가수 활동을 했던 예술인이었습니다.  아일랜드 태생의 독불장군 모린 오하라 스토리 육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유난히 활기차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나무를 오르고 낚시하는 것을 즐겼으며 소년들과 축구를 즐기는 왈가닥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역 연극 활동 등을 통해 배우의 꿈을 키웠고 위대한 배우가 되기 위해 1934년 불과 14살의 나이로 애비 극장에 입사하였습니다. 일종의 극단 단원으로 활동한 것 같은데요. 극단에서 청소 및 잡일을 하면서 애비 극단에서 1년을 보낸 후 그녀는 단역을 맡을 수 있게 됩니다. 17세가 된 그녀는 비로소 비중있는 배역을 맡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보다 더 행운이 찾아오게 됩니다.  당시 최고로 잘나가던 연예인 해리 리치먼이 그녀를 눈여겨보았고 그는 그녀에게 런던의 한 영화사에서 진행하는 스크린 테스트를 받아보게 권하였습니다. 하지만 스크린 테스트는 성공적이지 못했고요. 영화 배우로 그녀의 업적 그녀의 두 번째 영화 1939년에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한 자메이카 여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그녀는 노틀담의 꼽추 영화 촬영차 헐리우드로 가게 되기 전 매우 성급한 결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영화 제작진의 일원인 조지 브라운이 그녀에게 반해 집요한 프로포즈에 18살의 그녀는 얼떨결에 결혼을 하였고 그녀가 헐리우드에 있는 동안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남편과는 함께 할 수 없게 되자 1941년 이 결혼은 무효가 되었습니다.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한, 노틀담의 꼽추 촬영장에서 영화 스탭과 친해지면서 또 멋모르고 결혼을 하였고 윌리엄이란 이 남자는 그녀가 벌어들인 영화 수입으로 과시용 집들을 사들이고 알콜에 중독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