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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과 첫 독점 계약을 맺은 원조 인간 샤넬 모델 이네스 드 라 프레상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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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네드 드 라 프레상쥬는 프랑스 귀족 출신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타일 아이콘입니다. 샤넬의 뮤즈로 출발해서 디자이너가 되었고 최근에는 유니클로에 콜라보 디자인을 출시하였네요. 질샌더에 이어서 그녀의 브랜드를 콜라보 런칭한다는 것은 그만큼 럭셔리한 이미지를 추구한다고 보여지네요. 프랑스 귀족 출신 모델 샤넬의 전설 이네스 드 라 프레상쥬 이네스 드 라 프레상쥬는 1957년 8월 11일에 태어났으며 그녀의 키는 181센티미터입니다. 그녀가 샤넬의 뮤즈가 된 이후는 1983년 칼 라커펠트가 샤넬의 수장이 되고나서부터입니다. 그녀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한몫했겠지만 그녀가 샤넬 여사를 닮은 점도 작용했다고 합니다. 샤넬과 공식적으로 첫 독점 계약이후 그녀만큼 오랫동안 모델 계약을 유지한 모델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네스는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로 불리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패션 엘리트에 관능적인 여인 자연 미인에서 말하는 인형 등 그녀를 칭찬하는 말은 너무나 많았지만 그녀를 대표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인간 샤넬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실제 성격은 위엄있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상반되게 매우 깨방정이라고 합니다. 발랄함이 극에 달해서 패션 무대에서도 소위 날라다닐 정도로 밝은 웃음과 끼를 주체하지 못해서 샤넬을 더욱 활기 넘치게 재기에 성공하는 데 일조했다고 합니다.  이네스의 출생 배경과 모델 경력 이네스 드 라 프레상쥬는 프랑스 가상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후작 출신의 국제 변호사였습니다. 아버지의 명성뿐만 아니라 그녀 집안은 사돈의 팔촌까지 유명 인사로 수두룩한 그야말로 최고급 명문가 집안 출신입니다. 부유하고 4개국어를 하며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맛있는 것은 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은 그녀는 운도 좋은 여자였습니다. 심지어 담배도 많이 피우는데 건강하고 피부도 좋습니다.  이네스는 고교를 졸업하고 17세에 모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키가 매우 크고 짧은 숏컷에 크고 까만 눈을 지닌 그는 자력으로 못 뜰 이유가 없었습니

60년대 잘나가던 패션모델 셀리아 하몬드가 동물 애호가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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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 7월 25일 영국 태생의 셀리아 하몬드는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호주와 인도네시아에서 자랐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차를 재배하는 농부였습니다. 부모의 영향으로 그녀는 10대 때부터 채식주의자였지만 모델 데뷔 이후 잘나가는 모피 모델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점이 있습니다. 패션모델에서 동물 애호가 셀리아 하몬드 1960년에 데뷔한 셀리아 하몬드는 루시 클레이튼 참 모델 아카데미 출신으로 훗날 최고 톱 모델이 된 진 쉬림프와 같은 기수였다고 합니다. 그녀와 함께 찍은 화보도 꽤 많이 보이던데요. 절친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셀리아 하몬드를 톱 모델로 키워준 사람은 포토그래퍼 노만 파킨슨이었고 그녀도 자신의 성공은 노만 덕분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잘 나가는 포토그래퍼들의 총애를 듬뿍 받은 것은 그만큼 그녀가 매력이 있다는 것이었겠죠. 모피 모델을 극혐한 이유 채식주의자였지만 그녀가 모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바다표범에 관한 다큐를 본 후 충격을 받은 후 모피 모델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적잖은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그녀는 모피를 입지 않고 모피 모델도 하지 않겠다고 하고서 종종 모피 혹은 뱀피 등 동물 가죽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 코트와 부츠 등을 신고 등장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한쪽면만 보고 선동하고 그러면서 언행이 불일치 되는 거 보면 일종의 망상환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동물 애호가가 된 이유 1968년에서 유명 기타리스트 제프벡의 오랜 연인으로도 알려진 그녀인데요. 제프벡은 그녀 말고도 구설에 오른 셀럽들이 많지만 그래도 셀리아하고는 1990년대까지도 친분을 유지한 것을 보면 거의 부부나 다름없었나 봅니다. 나름 겉멋 든 친구들이라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왠지 한국의 이효리와 이상순이 떠오르네요. 다시 그녀가 동물 애호가가 된 이유는 모델 시절 친구들과 함께 사는 아파트로 가는 길에 황폐한 집의 창문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

최초의 옆집 언니 스타일 1960년대 패션 모델 아그네타 프리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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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와 옆집 언니 스타일로 친근한 이미지의 아그네타 프리버그는 1960년대를 대표한 스웨덴 태생의 패션 모델입니다. 트위기와 베르슈카의 명성을 이어 업계 세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은 그녀는 10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71년 프랑스 파리의 호텔 꼭대기 층에서 떨어져 사망하였습니다.  1960년대를 대표한 패션 모델 아그네타 프리버그 아그네타 프리버그는 1945년 6월 2일 스웨덴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사업을 하던 그녀의 아버지와 학교 선생인 그녀의 엄마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고 그녀가 15살 무렵 뉴욕으로 여행을 갔다가 포드 에이전시 관계자 눈에 들어 계약을 하였고 곧바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청순하고 키가 크고 신선한 매력의 아그네타는 보그와 엘르 및 마드모아젤, 글래머 잡지 등 각종 패션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였습니다. 패션 모델 뿐만아니라 1960년대 후반에는 반전 및 인권 운동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는데요.  의문의 죽음 1971년 5월 호텔에서 머무르고 있다가 창밖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10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5월 1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약물이나 음주 등을 의심했지만 사망할 당시 그녀의 몸에 마약이나 알코올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평소 그녀는 여가 시간에 노래와 글쓰기 그리고 기타와 피아노 연주, 승마와 발레 등 다재다능한 취미가 있었으며 특히 남다른 독서광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어니스트 훼밍웨이였습니다. 기타의 신으로 불린 락커 지미 헨드릭스와 몇 년 동안 교제한 것으로도 알려졌죠. 또한, 지미 헨드릭스 및 여친 데본 윌슨과 아그네타 프리버그 셋 다 1년 안에 죽었으며 데본 윌슨과 아그네타는 똑같이 창문 밖으로 떨어져 죽었습니다.

레브론의 뮤즈 보그지 모델을 가장 많이 한 슈퍼모델 로렌 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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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렌 휴튼은 1943년 11월 17일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아버지 로렌스 브라이언 허튼과 엄마 베렌스 허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그녀의 부모는 이혼하였고 휴튼은 마이애미에서 플로리다의 템파로 이주했습니다. 1970년대를 대표한 슈퍼모델 로렌 휴튼 엄마와 재혼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로렌 휴튼은 1956년 6월 아버지가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실도 모른채 유년 시절을 탬파에서 보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종의 농업 잡지 편집장으로 일했고 이혼 후 재혼하여 테네시 주 셸비에서 살다가 사망하였는데요. 훗날 로렌 휴튼은 자신의 인생에서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던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허튼은 말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와 똑같이 생겼고 아버지의 성을 따랐지만 자신이 가진 것은 아버지의 편지와 그의 두 권의 책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로렌휴튼 경력의 시작 로렌 휴튼은 명문대인 서던 플로리다 대학에 입학하였고 중간에 편입하여 툴레인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잠시 휴학 중인 3개월 동안 그녀는 해외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뉴욕의 플레이보이 클럽에서 런치타임 버니로 일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그녀의 본명 매리 로렌스 휴튼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여배우 로렌 바콜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닉네임을 로렌으로 개칭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 기간 동안 일했던 시간들을 몹시 후회하였는데요. 다시는 자신을 그런 경멸적인 위치에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바니걸로 일하면서 얻은 것도 있습니다. 그녀가 남에게 관심을 받고 모델 일을 하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떤 점이 그녀를 모델 세계로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학 졸업 후 신문 광고에 크리스찬 디올에서 모델을 뽑는다는 정보를 보고 지원하여 주당 50달러를 받고 화장품 모델로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계약한 당시에는 벌어진 치아 교정을 하겠다는 전제가 들어가 있었지만 그녀는 말로

덴마크 출신 슈퍼모델 올리비아 빈텐의 매력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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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모델 올리비아 빈텐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12살에 코펜하겐 길거리에서 캐스팅된 후 활발한 모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녀의 남다른 스타일과 패션 감각이 돋보입니다. 특히 곱슬곱슬한 헤어 스타일이 최고입니다. 1999년생 올리비아 빈텐 데뷔 스토리 올리비아 빈텐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자랐고 여전히 그 도시를 사랑하는 모델입니다. 12살 때 길에서 캐스팅되었지만 13살 무렵부터 짧게 아르바이트 식으로 일을 했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그보다 뒤로 보입니다. 그녀는 모델로서 경력을 화려하게 쌓고 있지만 그에 대한 공로는 오로지 그녀 어머니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올리비아 빈텐은 어머니가 오랫동안 모델로 일을 해왔기에 자식에게 직업적 노하우를 충분히 전수했을 겁니다. 게다가 남다른 유전자까지 물려준 것이죠. 올리비아 빈텐의 매력 탐구 올리비아 빈텐은 키가 작고 왜소해보이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키가 178cm가 넘으니 모델로서 결격 사유는 없어 보입니다. 2023년 23살이 된 그녀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델 중 한명입니다. 아마 앞으로 더 유명해지게 될 것 같은데요. 이미 인터넷 세계에서는 매니아가 많은 걸로 알려져있습니다. 올리비아 빈텐은 무엇보다 헝클어진 펌 헤어 스타일에 있습니다. 보아하니 천연 곱슬처럼 보이고요. 엉성하고 지저분하게 늘어뜨린 스타일이 너무 멋집니다. 아마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고 그녀에 관해 열광하게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그녀의 헤어 스타일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생머리를 했을 때는 매력이 현저하게 반감됩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개성도 없어 보이기에 그녀가 푸석해 보이는 웨이브 헤어를 트레이드 마크처럼 고수하는 것은 신의 한수로 보일 정도입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올리비아 빈텐 자신의 고향을 너무 사랑하고 여행도 힙합도 좋아하는 그녀는 전형적인 신세대입니다. 그녀의 매력은 마치 90년대의 헬레나 크리스텐센과 케이트 모스를 섞어 놓은 분위기에 있습니다.  투박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