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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킹 핑크 탄생에 일조한 1930년대 패셔니스타 데이지 펠로우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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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영국 상류 사회에서 가장 사악한 여자로 악명이 높았던 데이지 펠로우는 독특하고 남다른 안목으로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사교계 명사였습니다. 영국 상류사회에서 가장 사악했던 여자 데이지 펠로우의 엄마는 미국 최초의 미싱기 발명가의 딸이었고 그녀 아버지는 프랑스 귀족 데카즈 공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실력이 출중하지는 않았지만 몇 편의 소설을 쓴 소설가였고 미국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이자 20세기 최고의 보석 수집가 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대표하는 타이틀은 막대한 재산의 상속녀였습니다. 못생기고 방탕한 속물 데이지 펠로우는 예쁘지 않았고 오히려 못생긴 편에 속했지만 돈이 워낙 많아 그녀의 외모는 평가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남다른 결핍이 있었고 그러한 결핍은 코카인 등 중독성 강한 약으로 채워 나갔습니다. 그녀의 남성 편력과 방탕한 행동으로 인해서 영국 상류 사회에서 가장 사악한 여자로 알려졌습니다.  딸도 못 알아보는 난봉꾼   데이지 펠로우는 윈스턴 처칠을 흠모했습니다. 당시 유부남이던 윈스턴 처칠을 유혹하는 데 실패하자 사촌 왕족과 결혼하였습니다. 결혼 후에도 온갖 남자들을 만나고 다녔고 훗날에는 그녀 딸들의 남자 친구부터 가장 친한 친구들의 남편을 유혹하는 탐욕스러운 식객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은 1910년 19살 때 장 드 브로글리 왕자와 했지만 남편이 운전 기사와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본 뒤로 둘 사이는 소원해 졌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1918년 군대에서 독감으로 사망했습니다. 독감으로 사망했지만 사실 동성애자인 것이 들통나서 자살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데이지는 각각 다른 남자에게서 낳은 세 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자식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자식을 유모에게 맡겨 놓은 터라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유모에게 자신의 딸인 줄도 모르고 저 예쁜 여자애들은 누구냐고 물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