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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의 역사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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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코르셋으로 돌아온 s-band 에드워디안 시대 코르셋 그러다 1900~1915년 에드워디안 시대에 코르셋은 여성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재등장하는데 살을 빼거나, 몸매를 과장되게 부풀리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 아닌 건강해지기 위한 도구로 탈바꿈하여 나타납니다. 시초는 1890년대 이네스 가체 사라우트 박사에 의해서 발명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네스 박사는 몸을 s 자로 만드는 게 척추 건강에 더 좋다고 하면서 거의 이름만 바뀌어서 S-band란 이름으로 1900년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코르셋은 물론 브래지어와 거들도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고요. 그러나 십년 인기도 반짝이었고 이것이 허리 건강에 좋기는 커녕 척추 건강을 악화한다고 밝혀졌습니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 동안 플래퍼 룩의 등장으로 평평하고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게 되면서 코르셋은 슬립 형태로 대체됩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스타킹이 주인공이었고요. 이래저래 몸을 조이는 도구는 꼭 하나씩 걸치게 만드는 세상이네요. 완전히 사라질 줄 알았던 코르셋은 2차 대전 후 매력 어필 용으로 섹시한 여배우들이 볼륨있는 몸매를 강조하면서 다시 등장할 기미가 보입니다. 뉴룩 시대 필수 아이템 코르셋 그리고 1940년대 후반 디올의 뉴룩, 소위 모래시계 체형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폭발적으로 부활합니다. 그렇게 1950년대까지 디올룩은 크게 유행하면서 이전 시대보다 더 극단적으로 유행합니다. 여왕의 명령으로 억지로 살을 빼기 위해 사용했던 코르셋이 1950년대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날씬해 보이기 위한 도구로 태세 전환이 이루어진 거죠. 그러다 또 실용주의 패션이 대두하면서 여성들의 실루엣은 비교적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는데요. 1960년대에는 소위 스판이라 불리는 라이크라 소재가 개발되면서 속옷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코르셋의 분할 점령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탈코르셋은 이루어졌지만

1900년대 유행한 코르셋의 역사(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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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유행한 패션 아이템 코르셋 이야기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주창하는 탈코르셋 운동으로 더 유명해져 이것이 패션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범주로 넘어간 듯 하지만요. 알고보면 더욱 꿀잼인 코르셋의 히스토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코르셋의 본래 이름은 스테이 코르셋이 소위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 때 금욕을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정조대의 원조라고 보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 16세기때 프랑스 헨리 2세 부인 카트린 드 메디치 왕비는 요즘 시대 태어났다면 페미니스트들에게 쌍욕을 먹었으리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귀족 여성들의 허리 사이즈를 줄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처묵처묵 해댔으면 그런 권고를 했을까요. 코르셋 발전에 기여한 카트린 드 메디치 왕비 그래서 역사는 코르셋의 발전에 기여한 이를 그녀라고 확신하더군요. 당시 코르셋의 이름은 스테이(stays) 라고 불렸습니다. 허리 비만을 멈추게 하는 도구로 만들어져서 그런 걸까요? 그런 탓인지 이것은 의상보다는 일종의 교정 도구처럼 만들어졌습니다. 상아나, 금속 등의 딱딱한 재질로 만들어져서 허리 단속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정조대와는 좀 다른 차원의 제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페어 오브 바디 페어 오브 바디 그러다 이 제품은 부드러운 천 소재의 페어 오브 바디 (pair of bodies) 즉, 몸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신체와 한 몸이라고 해서 붙여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허리 사이즈를 더이상 증가하지 않게 묶어 두는 도구로 상당히 오랫동안 일조한 것 같습니다. 18세기 말 코르셋 18세기 말에는 반 원통 모양의 소재 및 형태 변화가 있으면서 여성들의 숨통을 좀 트이게 했습니다. 그러다 1800년대 초 하이웨스트 엠파이어 스타일의 유행으로 코르셋의 존재감은 많이 약해졌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코르셋 이후 1840년 이후 빅토리아 시대가 오면서 과장된 곡선미를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아시다시피 가슴과 둔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