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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모델계의 그레이스 켈리로 불린 릴리아 마커슨 레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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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 마커슨 레카스는 1950년대 포드 에이전시를 대표한 최고 슈퍼모델 중 한명이었습니다. 주류 패션 잡지의 표지 모델은 물론 어빙펜 아베돈 등의 최고 포토그래퍼들에게 사랑받는 모델이었으며 프랑스 쿠튀르 컬렉션의 첫 번째 미국인 모델이기도 하였습니다. 유명 빵집 딸 모델이 되다 릴리안은 미국 코네티컷 하트포트에서 태어났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스웨덴 이민자였습니다. 그녀 아버지는 웨스트 하트포드에 베이커리를 운영하였고  18세에 첫 데뷔를 한 그녀는 파란눈에 갈색머리 그리고 170센티가 조금 넘는 키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녀는 그레이스 켈리와 흡사한 이미지로 우아하고 도도한 이미지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활약했습니다. 1949년에 보그지 첫 표지를 장식하였고 광고주들에게도 인기있는 모델이었습니다. 25년만에 귀환했지만 그녀는 결혼 후 모델일을 쉬다가 아이들을 다 키운 후 80년대 초반 25년만에 모델계로 돌아왔습니다. 52세의 모델을 받아주는 에이전시는 없었지만 그녀는 시니어 모델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코튼클럽 등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당시만해도 나이 든 여성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기에 화려한 귀환으로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엄혹한 시절에 모델을 다시 하려고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나요? 90세에 사망한 비교적 장수 모델 십대에 모델로 데뷔하여 중간에 잠시 쉬고 70대까지 활동한 그녀는 치매 합병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2019년  5월 24일 사망했습니다. 그녀 나이 90세였습니다. 

1950년대 벨라이드의 선두주자 백조가 환생한 모델 바바라 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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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포토그래퍼들에게 사랑을 받은 슈퍼모델 바바라 뮬렌 이야기입니다. 175센티미터의 키에 허리가 20인치였던 그녀의 가녀린 체형은 1950년대보다 1990년대 더 빛났을 체형이지만 그 시대에도 압도적인 매력을 보여줬습니다. 당시에는 풍만한 바디의 헐리우드 스타들이 장악하던 시대였다는 것은 참고하시고요.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입이 거친 소녀 바바라 엘리스 뮬렌은 1927년 6월 3일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플로럴 파크에서 두 딸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브루클린에 사는 터프한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그녀의 아버지는 은행원이었고 어머니는 재봉사였습니다.  바바라 뮬렌이 18살이 되자 퀸즈의 한 미용실에서 어시스트로 취직하게 되었는데요. 관계자의 눈에 띄어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에서 돈 많은 고객을 위해 옷을 입고 등장하는 소위 피팅 모델로 일하다 2년 쯤 쉬고 있었는데요. 신데렐라 탄생 당대 최고 에이전트 대표 아일린 포드는 바바라 뮬렌을 보고 이 소녀는 괴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950년대 초반 뷰티 패션 업계는 미의 기준들이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바라 뮬렌은 그 진화의 선두에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패션 모델들은 상류층의 사교계 여왕들이 차지하였으나 도비마를 비롯하여 거리에서 발견된 여성들이 대거 상류층 모델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아일린 포드를 포함한 모델 에이전트가 생겨나면서 모델을 직업화하는 체계가 잡히기 시작하였고요. 1947년 바바라 뮬렌은 신데렐라가 된 해였습니다. 핑크 드레스가 맞는 모델을 섭외 중 옷이 딱 맞는 그녀를 찾았고 보그 패션지 사진가 존 롤링스가 그녀와 첫 작업을 하면서 부끄러움은 이내 상쇄하게 되었고요. 이후로 그녀는 패션 바이블적인 인물로 우뚝 서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찬란한 모델들인 도비마도 수지 파커와도 비슷한 듯 색다른 매력을 보여 준 독보적인 모델로 평가 받았고 오히려 대중들보다 포토그래퍼들에게 압도적인 사랑을 받은 모델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