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랙퀸으로 추앙받은 70년대 슈퍼모델 그레이스 존스

 1980년대 가수이자 슈퍼모델로 대중에게 매우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긴 그레이스 존스 이야기입니다. 유니섹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레이스 존스의 이미지는 단연코 압도적으로 모호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외모였습니다.



그레이스 존스 성장 배경





1948년 5월 19일 자메이카의 세인트 캐서린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존스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가족과 함께 그녀 나이 12살 때 뉴욕 시라큐스로 이주하였습니다. 으레 엄숙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반항기가 심하듯 그녀는 13살 때 집을 나가 히피 공동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말이 히피지 그냥 집 나간 가출 소녀였습니다. 그녀는 당시 노는 아이들의 테크대로 고고 댄서, 요즘 말로는 클럽에서 춤을 추며 돈을 벌면서 끼를 발산하고 다녔습니다.



1970년대 초반 그레이스 존스는 나중에 뉴욕으로 가서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모델 활동을 시작하지만 그녀의 외모가 대중적으로 어필하지 못하여 그녀는 프랑스로 가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녀의 지나치게 강직하게 남성적이고 까만 피부로 주목을 끌었고 입생 로랑이나 겐조, 헬무트 랑 등의 유명 디자이너의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독특하고 강렬한 외모의


그녀는 현대판 조세핀 베이커로 불리며 인종과 성별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켰고 또한, 외형적인 독특한 매력뿐마 아니라 가수로서도 남다른 기질을 발휘하였습니다. 1977년에는 앨범을 발매해 크게 히트하였고요.






특별히 장 폴 고티에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녀 이름은 몰라도 외모만 보면 모두가 알 만큼 강렬한 외모의 소유자니까요. 그러나 그녀의 막강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델 생활, 보다 정확하게는 클럽에서 방탕하게 노는 생활에 환멸을 느꼈고 항상 배우가 되고 싶어하던 터에 배우 활동에 주력하게 됩니다.


매사 하고 싶은 대로 살던 그레이스 존스는 생방송 중 진행자 뺨도 때리는 등 싸가지가 없기로 유명했는데요. 자신 조차도 성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직도 아이같고 철이 없다고 했다는데요. 아마 그 말을 나이 50이 넘어서 한 걸로 기억합니다.


다재다능 캐릭터



점차 그녀는 영화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긴 했지만 카메오 이상의 큰 울림은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강렬한 외모 못지 않게 모든 면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는데요. 스웨덴의 경비원이나 터키 남자 등을 만나면서도 가히 엽기적인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명성에 비해 사생활 관리를 더럽게 못한 것 같습니다.






모델 및 배우 그리고 가수로서도 나름의 성공을 거둔 그레이스 존스는 모델 생활에 이어 음악 생활에도 환멸을 느낀 후 1989년부터 긴 휴식 기간을 가졌습니다. 90년대에는 대중의 눈에 거의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높은 그액을 받고 기업 행사에는 가끔 출연하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모델보다 가수로서 더 성공한 그녀는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는 전혀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70살이 넘은 그녀는 자메이카의 땅에 집을 지을 계획과 함께 어린 손녀 아테나와 함께 뉴욕을 여행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녀의 아들 이름은 아폴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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