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스파이, 그리고 진정한 동성애를 찾은 대표적 인물 토토 쿠프만 이야기

토토로 불린 카타리나 쿠프만은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활동한 모델이며 전쟁 동안 이탈리아 저항군의 스파이로 활약한 여전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1908년 10월 28일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기병장교였고 그녀의 엄마는 네덜란드와 자바 혼혈이었습니다.





카타리나 쿠프만의 별명


카타리나 쿠프만은 아버지가 어릴적부터 불러준 별명 토토를 예명으로 사용하였습니다. 2020년 발해된 토토앤 코코는 나치에 저항한 모델 토토와 나치에 협조한 코코 샤넬의 극명한 차이를 담은 내용이 들어간 책이라고 하는데요. 그건 그렇고 토토 쿠프만은 6살 연상의 친언니 헨리 쿠프만이 있었는데요. 오디 쿠프만이란 별명으로 당대 엄청나게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다고 합니다.



1920년대 짧은 모델 생활


바바라 골렌이 그랬듯 토토 쿠프만도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난 루트를 따라 1920년에는 자바를 떠나 네덜란드의 기숙학교에 다녔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어 등을 유창하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모델이 되기 위해 파리로 갔습니다. 파리에서 그녀는 코코 샤넬의 하우스 모델로 일했지만 겨우 6개월만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델 일을 완전히 그만 둔 것은 아니고 그녀는 보다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보그 파리에 정기적으로 그녀는 화보를 찍었고 다양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배우로도 활동했습니다. 비록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갔지만 영화 돈 후안의 사생활에서 작은 역할도 맡았었고요. 그 영화 시사회에서 그녀보다 서른 살이 많은 영국의 비버브룩 남작을 만나 불륜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부자 사이를 농락한 요부


비버르룩 남작은 20세기 전반기 영국에서 언론과 정치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거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녀가 유럽 전역을 여행하는 비용을 대주었고 물주처럼 그를 활용했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토토가 그의 아들하고도 사귀었다는 사실입니다. 프렌즈 시트콤에서 모니카도 했던 일이고 프랑스 영부인까지 된 카를라 브루니도 실제 부자 사이를 희롱한 적이 있었죠.


아무튼, 토토는 비버르룩 남작 아들이자 전투기 조종사였던 막스 아이트켄과 교제를 하여 그의 아버지이자 전 남친은 괘씸죄로 토토를 상류사회에서 소외시키는 작전에 돌입합니다. 아이트켄과 토토는 4년간 함께 살았지만 결혼까지는 하지 않고 헤어졌습니다. 사실 알고보니 아버지 비버르룩 남작과 모종의 계약을 맺었던 것이고 토토는 아들과 결혼하지 않으므로해서 그에게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저항군의 스파이로 활동


그렇게 일대 파란을 일으킨 토토는 1939년 이탈리아로 가서 살기 위해 런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반무솔리니 저항군의 지도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탈리아 저항군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파시스트 모임에 잠입하다 붙잡혔습니다. 그녀는 이후 밀라노와 라치오의 감옥에서 몇 차례 수감된 후 탈출하여 페루자 주변의 산 속에 숨어서 그곳에서 지역 저항군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탈출하여 베니스로 향했습니다. 



1944년 10월에는 베니스에 있는 독일 장교들의 비밀 장소로 활용한 다니엘 호텔에 잠입하여 스파이 활동을 하다 붙잡혀 라벤스부르크 수용소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4월  해방되기 바로 전 나치 당국은 토토를 포함한 수백 명의 죄수들을 스웨덴의 적십자사로 석방했습니다. 토토의 전 남자친구 중의 한명인 윈스턴 처칠의 아들 랜돌프 처칠은 예테보리로 가서 그녀의 짧게 깎인 머리를 위한 가발부터 새 옷과 새 여권을 얻는 것을 도와 줬다고 합니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다


투옥 등으로  지친 몸을 스위스의 아스코나에서 요양하는 동안 1945년 운명적인 사람을 또 만나게 됩니다. 이래저래 남자들한테 지친 탓인지 그녀는 미술 갤러리를 운영하는 에리카 브라우젠이란 동갑의 여성을 만나서 연인이 되었고 남은 인생을 함께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토토는 아낌없이 연인을 위해 도와줍니다. 에리카는 자신의 상업 갤러리를 런던에 열고 싶어했고 토토는 하노버에 갤러리를 열게 해줬습니다. 이런 저런 인맥들을 활용해 그녀는 성공적인 갤러리 전시를 했고 하노버 갤러리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갤러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감각적인 갤러리 운영도 그렇지만 특이한 여성 두명에게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겠죠.



그리고 토토 쿠프만은 1950년대 런던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여러 고고학 발굴에 참여하며 런던 고고학 연구소에 책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참 바쁘고 열심히 산 여성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1959년 토토와 에리카는 이탈리아 남부 판레아 섬에 부동산을 구입해서 6개의 빌라를 짓고 매우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이 두 여성은 1991년 8월 토토 쿠프만이 8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그녀가 떠나자 에리카는 8일 동안 시신이 안치된 방에 갇혀 있다가 매일 아침 토토 얼굴 주변에 놓아줄 신선한 장미꽃을 사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18개월 후 그녀를 따라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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