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귀족과 이혼 후 프랑스 재벌 후계자와 재혼한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의 라이프 앤 러브 스토리

 러시아 태생의 슈퍼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녀 가장이었습니다. 오로지 뛰어난 외모 하나로 무일푼에서 억만장자까지 된 스토리입니다.






고리키의 도시에서 태어난 나탈리아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는 모스크바 동쪽으로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니즈니노브고로드 당시에는 고리키라고 불리는 가난한 도시에서 자랐습니다. 



위대한 작가 막심 고리키가 태어난 곳이라서 고리키라고 지명을 바꾼 것 같은데요. 이름을 보디아노바로 바꿔도 될 정도로 그녀는 러시아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니즈니노브고로드는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지만 나탈리아는 춥고 황량하고 딱딱한 곳이었습니다. 인구 대부분은 자동차나 초콜릿이나 보드카 공장에서 일을 했고 법은 없고 경찰도 의미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이 사치일 정도였고 그중에서 나탈리아 가족에게는 모든 것이 사치일 정도로 가난하게 보냈습니다. 





나탈리아는 6살 때까지 외가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동생이 태어났을 때 다른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없을 정도로 일찍 가족을 떠났고요. 

아픈 동생도 버거운데 셋째 동생까지 대기 중이어서 그녀의 엄마는 24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나탈리아의 세 자매는 모두 다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둘째 동생 옥사나가 뇌성마비와 자폐아로 태어났기에 엄마는 아픈 자식을 돌봐야 했기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요. 나탈리아는 너무너무 가난한 집에서 성장했기에 옷을 잘 입지 못하고 지나치게 말랐다는 이유로 반친구들에게 극심한 놀림을 당해야 했습니다. 


과일 장사하던 시절


그런 것에 상처를 받을 틈도 없이 나탈리아는 엄마를 도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나탈리아가 11살이었을 때 그녀는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거리에서 과일과 채소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학교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고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학교에 가거나 말거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일을 팔고 학교에 가고 집에선 요리를 하고 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고 초라한 옷을 입었지만 조부모님의 엄격한 교육 방식으로 인해서 가난하다는 것이 문화적으로 세련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조부모님을 따라 오페라를 보러 가고 지역 연극단에 가서 시와 고전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나이트에 가는 등 불량 생활을 하는 대신 차선으로 선택한 지루함 탈출 놀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그들과 접촉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라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사는 곳에는 패션과 무관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속 나오미 켐벨이 그녀가 들어본 유일한 모델이었습니다. 


나탈리아 파리로 가다


15살이 된 나탈리아는 어머니 집에서 나와 그녀의 친구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귄 그녀의 남자친구는 스물두 살의 모델이었는데 밤에는 떼인 돈을 받아주는 일을 하였는데요. 나탈리아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베이비 페이스의 모델을 뽑는다는 정보를 그녀에게 전하며 용기를 주며 모델 일을 권했고 엄마의 치마를 가위로 짧게 잘라 입고 간 오디션에서 그녀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과일을 팔다가 캐스팅 디렉터에게 스카웃되었다는 말도 있는데요. 그렇게 낭만적인 상황과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1999년 12월 1일 나탈리아는 러시아을 떠났습니다. 모델 에이전트는 그녀에게 영어를 배우라고 하였고  17살의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는 그렇게 파리로 날아갔습니다. 그녀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빨리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주당 135달러를 버는 것만으로 부자가 된 것 같았고 매우 행복했습니다. 



그녀는 외국 생활에 적응을 잘했고 영어도 두 달 만에 기본적인 회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를 모델 세계로 인도한 러시아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소원해졌습니다. 하지만 나탈리아는 그가 해준 모든 것들을 결코 잊지 않았고 그녀가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 벤츠를 선물했습니다. 


영국 귀족과 사랑과 결혼





나탈리아가 파리에 도착한 지 약 1년 후 그녀는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 있는 식당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바로 에드워드 헨리 버클리 포트만 9세 자작의 셋째 아들이자 영국에서 스물두번 째로 부유한 가문의 일원인 저스틴 포트만이었습니다. 16세기에 헨리 8세가 포트만 가문에게 런던 중심부의 땅을 많이 준 덕택이었죠. 



2001년 19살의 나탈리아는 그녀보다 13살 연상의 서유럽 귀족, 비록 대머리이긴 했지만 외모는 근사했던 능력있는 독신주의자였던 저스틴과 결혼하여 패션계 신데렐라가 현실에서도 신데렐라가 되었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나탈리아는 다산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한데요. 결혼한 해에 첫 아들을 낳았고 2005년과 2007년에 딸과 아들을 낳았습니다. 


평민과 귀족의 명백한 신분차는 현대에도 명백하게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둘은 진심으로 서로 사랑했고 보드카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2001년 12월 22일 나탈리아가 첫 아들 루카스를 낳았을 때 그녀 나이는 아직 19살이었습니다. 그녀는 출산한지 2주 만에 무대에 다시 올랐습니다. 출산 후 살이 너무 많이 빠졌고 몸이 말라서 2002년 그녀는 슈퍼노바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섭외 요청을 받았습니다.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에게 모델 일은 그녀에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회와 경험 그리고 부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남자도 만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번 돈으로 조부모님을 위해 아파트를 샀고  그녀의 아픈 동생을 위해 간병인을 고용했으며 막내 동생을 영국 학교에 등록시켰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엄청난 부와 행운을 허투로 낭비하지 않고 올바른 일에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고작 스물두살의 나이에 러시아의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네이키드 하트 재단을 만들어서 가난과 싸우는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녀는 항상 그랬듯이 돌려주는 것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것이 자신을 아침에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명품 브랜드 재벌 후계자와 재혼





영국 귀족 남편과 평생을 잘 살것 같았는데 2011년에 막을 내렸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은 그녀가 가졌고요. 그녀에게는 새로운 남자 친구도 생겼습니다. 처음 만남은 2008년 루이비통 광고 촬영장에서였습니다. 그는 바로 LVHM 명품 재벌가 장남인 앙투안 아르노였습니다. 촬영장에서는 수많은 슈퍼모델이 있었음에도 그의 눈을 사로잡은 오로지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뿐이었던 겁니다. 정작 그녀는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정숙한 유부녀였고요.


그런데 2011년 나탈리아의 이혼 발표가 있자 그는 2년 반이나 교제하던 여친과 이별 통보를 하고 나탈리아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두 달 후 이들은 어렵게 만남이 성사되었고 그렇게 사랑에 빠졌습니다. 2014년 나탈리아는 아들 맥심을 낳았고 2016년에는 로만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새해 첫 날 42세의 앙투안 아르노는 37세의 그녀에게 청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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