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위대하고 귀족적인 마지막 모델 도비마

 도비마는 카르멘 델로피체와 함께 50년대 우아하고 귀족적인 패션계를 더욱 멋지게 빛내주던 진정한 슈퍼모델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로시 버지니아 마가렛 유바의 어린 시절





도비마는 1927년 12월 11일 미국 뉴욕의 퀸즈에서 폴란드계 미국인 경찰관과 아일랜드 태생의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열 살 때 류마티스 열을 앓아 7년 동안이나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보통은 1년만 누워 있어도 되었지만 그녀 엄마의 과잉 보호로 인해 7년 동안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뉴욕의 거리에서 보그 편집장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녀의 본명은 도로시 버지니아 마가렛 유바였는데요. 모델 데뷔를 하면서 압축하며 도비마란 예명을 쓰게 됩니다. 


1분당 1달러 소녀


모델로 활동한 후 그녀는 1년도 안 되어 당대 최고로 돈을 많이 버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다른 모델들이 시간당 25달러를 받았다면 그녀는 시간당 60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녀는 1분당 1달러 소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도비마는 당시 발렌시아가나 크리스찬 디오르 그리고 지방시와 피에르 가르뎅 등 기라성 같은 디자이너 및 최고의 포토그래퍼와 함께 일하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1955년에 포토그래퍼 리차드 아베돈과 함께 작업한 코끼리와 찍은 사진은 20세기 최고의 장면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코끼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 사진 속 드레스는 입생 로랑이 크리스찬 디올 밑에 일하면서 디자인한 첫 번째 이브닝 드레스였습니다.


또한, 오드리 헵번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퍼니 페이스에서 패션 모델 역할로 단역을 맡은 경험도 있습니다.


세번의 결혼과 이혼


도비마는 일생에 세 번의 결혼을 하였고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그녀가 아파서 지내는 동안 알고 지내던 윗집의 남자였습니다. 50년대 후반 그와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을 하였지만 그는 그녀가 일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학대하였고 그녀가 번 돈을 다 가져가 그녀를 무일푼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둘 사이에 태어난 그녀의 유일한 딸의 양육권마저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혼 후 평생 딸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959년 모델 생활을 은퇴하였지만 1962년까지 포즈를 취했습니다. 본래 배우를 꿈꾸었기에 모델 활동보다는 배우로 일하길 시도했지만 모델에서 배우로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돈을 한 푼도 모으지 못했습니다.


사랑과 죽음





1970년대 그녀는 플로리다로 이주한 부모를 따라 함께 이주하였고 부모와 함께 살며 화장품을 팔고 식당에서 일하며 갖은 고생을 하게 됩니다. 1980년대는 피자 가게 여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 바텐더와 사랑에 빠져 1983년 결혼했지만 안타깝게 그는 3년 후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일이 그녀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던지 1990년 5월 3일 그녀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차드 아베돈이 말하길 도비마는 위대하고 우아하고 귀족적인 미인들 중 마지막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시대에서 가장 주목할만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미인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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