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사랑하고 신이 질투한 배우 카트린 드뇌브

신이 질투할 정도로 아름답게 생긴 프랑스 최고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특유의 지적인 퇴폐미와 고혹적인 매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입니다. 1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력과 미모 모든 면에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은 카트린 드뇌브에 관해서 좀 더 알아볼까요?




카트린 드뇌브에 관한 이야기







1943년 7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연기를 하는 부모와 네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난 카트린 드뇌브는 부모처럼 연기자가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성장하였습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주목 받는 여배우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그녀는 13세에 아역 배우로 데뷔하였습니다.



소녀에서 창녀까지 소화 가능



카트린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로 만든 작품은 1964년 그녀가 스무 살에 찍은 영화 쉘부르의 우산입니다. 영화 줄거리는 알제리 전쟁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야하는 18세의 임신한 소녀 역을 맡았는데요. 실제로 카트린 드뇌브는 18세에 아이를 낳았죠.









이후 벨 데 주르 영화로 전설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 등극합니다. 부유한 여성이 타락한 창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에로틱하면서 매우 매력적으로 연기하여 치명적인 매력을 보여줬는데요. 그리고 이 영화 속 의상은 전부 입생로랑이 주도하면서 입생로랑과 카트린 드뇌브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셀럽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벨데주르 속 카트린 패션은 너무나 아름답고요. 그렇게해서 탄생한 유명한 백 벨 데 주르도 있죠.




배우로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70년대는 샤넬 향수 광고 모델로 신비롭고 우아한 매력을 보여줘 미국 대중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4명의 남자





절제되고 감각적인 매력의 소유자로 자신을 성상품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상의 배우로 고결함을 유지한 카트린 드뇌브는 영화 속 카트린의 연기력이나 외모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그녀의 사생활은 브리지트 바르도 만큼이나 파란만장했습니다. 그러나 브리지트 바르도가 박리다매로 남자를 만난 것에 비하면 카트린 드뇌브는 나름 핵심적인 인물만 만났다고 봐도 될 것 같긴 합니다.










독실한 카돌릭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17살에 33살의 로제 바딤과 사랑에 빠졌는데요. 바딤은 바로 브리지트 바르도의 첫사랑이자 첫 남편이기도 했죠. 이미 두 번의 이혼 경험이 있는 바딤 사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964년 바딤과 헤어지고 1965년 역시 희대의 바람둥이 포토그래퍼 데이비드 베일리와 눈이 맞았습니다. 


데이비드 베일리는 22살 유부남 신분에 17살이던 진 슈림프턴과 사랑에 빠져 이혼까지하고 그녀와 4년간 교제하다 카트린 드뇌브와 사랑에 빠져 1965년에 결혼했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으면서 결혼까지 한 것도 신기했지만 이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고 1972년에 이혼하였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서다



프랑스 여성들은 그 어떤 나라 여성들보다 자기 관리도 잘하고 미인도 많은데요. 그만큼 이성적으로 어필하는 매력을 지닌 것을 여성으로서 큰 자부심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카트린 드뇌브도 세계적으로 미투 붐이 발발할 무렵에 반대 의사를 표하며 이런 식의 페미니즘은 동의하지 않으며 남성은 여성에게 추파를 던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한 것은 문제가 되지만 지나친 금욕주의로 변질된 현상을 우려한 측면에서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 그녀의 주장은 말많은 피시주의자들에게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 5일만에 항복하고 잘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카트린 드뇌브는 전적으로 여자의 편에서 얘기하였지만 예쁜 여자가 그리 말하니 아몰랑이 되었나 봅니다. 카트린 드뇌브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미디어의 조작과 광기가 너무 무섭다며 더는 이에 관해 말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연기 천재 말론 브란도가 연기는 너무 쉽고 배우는 하찮은 직업이라고 한 것처럼 카트린 드뇌브는 재능보다 외모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불공평하지만 그게 인생이라고 하였는데요. 더 불공평하게도 카트린 드뇌브는 외모는 물론 연기의 재능까지 부여받았으니 타고나고 탁월하고 운도 좋은 최고의 팔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도 사랑도 고요하고 신비스럽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열정적고 역동적으로 임했는데요. 로저 바딤과 이혼 후 1966년에는 잠시 클린트이스트우드와도 교제하다 


1971년에는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 마르첼로와 사랑에 빠져 다음 해 딸 치아라를 낳고 1975년에 헤어졌습니다. 


 그밖에 디자이너 입생로랑과 제인버킨의 남자로도 유명한 세르쥬 갱스부르 그리고 제라르 드빠르디유 등 숱한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습니다.  1970년대 말에는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과도 교제하였고요.


엄마를 닮아 아들도 일찍 이성에 눈을 떠서인지 카트린 드뇌브는 1987년 43세의 나이에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카트린 드뇌브의 취향



우아한 생김새와 다르게 지독한 골초로 알려진 카트린 드뇌브는 어떤 날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내에서 실내 흡연을 금지하자 그냥 벌금을 내고 말지 담배를 끄라마라고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매사 솔직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인 카트린은 2014년에도 소피 마르소와 언쟁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올랑드 대통령이 스캔들이난 배우와 헤어진 사실을 두고 비열한 겁쟁이라고 하니 카트린 드뇌브가 아무리 지지를 하든 안 하든 대통령에게 비열하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표현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지속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던 카트린 드뇌브는 2019년 영화 촬영 중 뇌졸중으로 인해 촬영을 중단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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