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의 마지막 귀족 앵무새 죽이기의 핀치 환생남 그레고리 펙 스토리

큰 키에 전형적인 미남형인 그레고리 펙은 1940년에에 데뷔하여 최고의 인기와 존경을 받은 배우였습니다. 



그레고리 펙의 출생과 성장





그레고리 펙은 1916년 4월 5일 캘리포니아주의 작은 도시 라호야에서 외동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엘드레드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여서 그런지 배우 데뷔 후 이름을 그레고리로 바꿨습니다.


그레고리 펙의 아버지는 동네 하나밖에 없던 약국의 약사였지만 약국 직원이 거금을 훔쳐 달아나는 바람에 도산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 그레고리가 3살 때 부모는 이혼하고 그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됩니다. 


하지만 외판원인 계부때문에 이동이 잦자 10살 때 가톨릭 사관학교에 4년동안 지내고 키워주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그래서 아버지와 살면서 샌디에고 고교를 졸업하고 샌디에고 주립대에 들어갑니다. 


의대생이던 그레고리가 꿈을 바꾼 이유



처음 주립대 교대에 입학한 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버클리 대학으로 편입해 의대생이 됩니다. 그러다 대학 4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연극 배우 경험을 한 뒤로 잠재된 포텐이 터진거죠.

그는 졸업 후 뉴욕으로 가서 배우 아카데미로 유명한 플레이하우스에 들어가 2년동안 전액 장학생으로 수업을 받았습니다. 


무일푼이던 그였지만 탁월한 외모 덕에 무명없이 배우로 성공할 수 있게 됩니다. 1942년 그는 핀란드 태생의 미용사 라이스와 결혼하였고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레고리 펙의 시대



1944년 첫 영화부터 주연을 맡은 그는 두 번째 영화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릅니다. 그리고 1945년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스펠바운스에서 잉그리드 버그만과 열연하면서 당대 최고 섹시 스타로 등극합니다. 여자들이 그를 보기 위해서 떼로 몰려 다니며 극장에 갔다고 합니다. 



그레고리 펙은 지적인 배우였기에 헐리우드 시스템의 부당함을 잘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어떤 스튜디오하고도 계약하지 않은 최초의 스타였습니다. 

그 바닥에 만연하던 반유대주의에 맞서 싸우기도 하였고요. 뭔가 유난을 떨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레이건이 정치인이 된다고 나갔을 때 반대 진영이던 그레고리에게도 니가 나가면 레이건 누르고 대통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정치인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미국의 진보주의자였지만 한국식 분탕종자는 아니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리버럴리스트로 핵 반대에 인종차별 반대를 비롯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국가에 대한 도리는 마땅히 하지만 국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지적해야 한다는 주의였는데요. 이 점이 가장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로서 최고의 매력과 연기로 인정도 받았고 사생활도 흠집없이 완벽했고 그러면서 나라를 위한 애국심도 남다른 가운데 나라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그때그때 목소리를 높이며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데 소신을 보였습니다. 



그레고리 펙의 사랑과 불행


그레고리 펙은 영화에서 만나는 여배우들도 당대 최고의 미인 배우들과 함께 했지만 그들과 단 한번도 스캔들을 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휴일을 함께 찍은 오드리 헵번과는 불륜설이 돌기도 했는데요.


불륜이 난 건 맞지만 상대가 오드리 헵번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오드리 헵번보다 예쁘고 에바 가드너보다 섹시하고 잉그리드 버그만보다 지적인 프랑스 출신 잡지 기자 베로니끄였는데요.


누구라도 그녀를 보면 안 반 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예쁘더라고요. 그레고리가 한창 인기가 높아지고 바빠지면서 가정에 소홀하게 되고 아내 라이스는 불만을 표출하면서 불화가 잦던 시기이기도 했지만요. 


그보다 17살 연하인 아름다운 기자가 그에게 이런저런 호감어린 질문을 하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영화가 끝나고 6개월 뒤 그레고리는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고 둘은 사겼고 그레고리는 13년간 함께 산 아내와 이혼했고 이혼한 다음 날 베로니끄와 재혼하여 1남1녀를 낳고 평생 해로하게 됩니다.


비록 베로니끄와의 시작은 다소 불미스러운 점이 있었지만 평생 한눈 팔지 않고 한 여자만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게 헐리우드 바닥에서는 기적과 다름 없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레고리가 좀 잘생겼어야 말이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좀 멀대같은 느낌이 들어서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세상 착해 보이고 자상해 보이는 것은 있지만 섹시한 매력은 없어 보이네요.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가진 헐리우드 최고 배우에게도 불행은 닥쳐왔습니다. 1976년 말년으로 접어드는 무렵에 그의 서른 살 된 장남 조나단이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2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있었다고 하는데요.


평소 눈물 많고 정 많기로 유명한 사람에게 첫정인 장남이 먼저 갔으니 얼마나 비통했을까요. 그렇게 슬픔은 묻고 그레고리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2003년 그의 나이 87세 어느 날 새벽 4시 아내 품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잠을 자듯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 조차 호상인 그는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조금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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