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이성과 지성 그리고 감성을 소유한 40년대 배우 로렌 바콜

1940년대 헐리우드 배우 중 가장 아름답고 섹시한 배우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로렌 바콜은 관능의 시대에 노출없이 눈빛 하나로 제압한 특별한 배우입니다.



로렌 바콜의 성장 컴플렉스 원인






로렌바콜은 1924년  9월 16일 뉴욕 브롱크스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로렌 바콜의 부모는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이었고 로렌이 6살 때 이혼 후 로렌은 엄마와 함께 맨하탄에 살게 됩니다. 로렌의 외가가 뉴욕에서 성공한 사탕가게 상인이었고 삼촌 덕분에 뉴욕의 명문 사립학교도 다닐 수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은 아니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아버지와는 그 이후로 만난 적이 없으며 엄마와는 엄청나게 친밀하게 지낸 반면 얼굴 한 번 안 비치는 아빠에게는 개자식이라고 욕할 정도였다고 합합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로렌의 어린 시절이 컴플렉스 덩어리였으며 자신감 있는 인생을 살았다고도 하고요.


훗날 로렌이 자신보다 스물 다섯살이나 연상인 험프리 보가트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결핍의 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댄서가 되길 원했지만 배우의 꿈을 키운 로렌



수줍은 컴플렉스 덩어리였다고는 하는데 꼭 그런 사람들 보면 끼는 넘치는 것 같습니다. 로렌 바콜도 댄서가 되길 원했지만 심한 몸치인 까닭에 춤은 포기하고 대신 연기자를 꿈꿨다고 합니다. 노래는 부쩍 잘 불렀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고교 졸업 후 1941년 드라마 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하였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연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커크 더글라스와 데이트도 몇 번 했다고 하고요. 극장 안내원부터 백화점에서 패션 모델로 일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료를 지불할 돈이 없어 아카데미는 중도에 그만두었습니다.



173cm가 넘는 로렌 바콜은 큰 키 덕분에 패션 모델로 일을 하였고 18살에는 하퍼스 바자 잡지 표지 모델도 장식할 정도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관계자 눈에 띄었고 첫 번째 작업하는 영화에 험프리 보가크와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됩니다. 험프리 보가트하면 당대 최고 배우 중 한명으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물론 오드리 헵번과도 작업한 적이 있죠.



패션 감각도 남달라 그의 트렌치 코트는 오랫동안 그의 상징 패션처럼 회자되곤 하였습니다. 키도 큰 편이 아니었고 얼굴도 그리 잘생겼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당시에는 연기도 잘하고 분위기가 그윽해서 인기가 있었나 봅니다.





첫 번째 영화에서 대박이 난 로렌 바콜



반유대주의가 팽배하던 시절, 즉 좌파 연예인들이 설 자리가 없던 터라 로렌 바콜은 직업적 위기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헐리우드 판에서 유대인을 꺼려하는 분위기도 심했는데 특히 유대인 출신 배우는 예쁘지 않다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들 로렌 바콜이 유대인 출신이라고 하면 깜짝들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운이 좋았던 것인지 무슨 수를 썼던 것인지 로렌 바콜은 첫 번째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는데요. 막상 촬영에 들어간 순간에는 험프리 보가트와 함께 연기하는 것이 너무 떨려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만 위로 뜨면서 대사를 했는데 그것이 대박이 난 것입니다. 험프리 보가트도 반하게 하고 관객들도 매료되게 만들었습니다. 로렌 바콜의 나이 19살 때 첫사랑과 결혼도 하고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내로남불로 논란의 중심이 된 로렌 바콜



험프리 보가트는 두 번째 결혼한 여배우 마요 메소트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요.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대로 의부증이 꽤 심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알콜중독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부인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이 더 술을 마셔 그도 알콜중독이나 다름없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어쨌든 둘의 사랑은 막을 수 없었고 험프리 보가트는 이혼을 하였고 45세의 험프리는 1945년 이혼하자마자 로렌 바콜과 결혼하였습니다. 자그마치 25살 나이차가 났으니 사람들의 뒷말이 없었을리가 없었겠죠. 로렌 바콜은 결혼 후 험프리와 몇 편의 영화 작업도 하였지만 1949년 첫 아들을 낳은 후 가정에 더 충실한 편이었습니다. 몇 년 후 둘째딸도 태어났고요.



세상의 질투와 달리 둘은 별탈없이 행복해 보였고 영원할 것 같았지만 1956년 험프리 보가트는 후두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평소 너무 많은 음주와 담배를 피웠기 때문입니다. 치료에 전념했으나 1957년 1월 14일 세상을 떠났고 죽기 전에 로렌의 팔을 잡으며 goodbye kid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잉그리드 버그만과 함께 작업한 영화 속 명대사가 here's looking at you, kid 였는데요. 평소 로렌 바콜에게 베이비란 애칭을 쓰던 험프리가 죽기 전에는 kid라고 부른게 인상적입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말을 참 근사하게하는 특징이 있던 것 같습니다. 유언조차도 영화 속 대사 같네요.


미망인이 된 로렌 바콜


32살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된 로렌 바콜은 1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했겠지만 그래도 너무 절망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나마 좀 위안이 되었던 것이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서 험프리의 절친인 프랭크 시나트라와 친밀해진 거였습니다. 


항간에는 험프리 사후에 교제를 했다느니 병중에 사귀었다느니 말이 많지만 누가 봐도 험프리가 아픈 동안 관계가 깊어졌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그래서 험프리 사후에 프랭크 시나트라와 약혼설이 돌았는데요. 이는 물론 기정 사실이었지만 언론에 먼저 정보가 나가는 통에 이들의 비참한 약혼식은 짧게 끝을 맺고 맙니다. 


로렌 바콜은 시나트라를 원망하면서 언론에 흘린 거라고 확신했고 프랭크 시나트라도 봉변이 두려워서였는지 그들의 끔찍할뻔했던 결혼은 없던 일로 넘어가게 됩니다. 훗날 둘 다의 잘못이 아닌 제 3자가 언론에 흘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사실 서로 내심 결혼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로렌 바콜의 정치색



큰 사건을 겪은 로렌 바콜은 당분간 영화 바닥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고 연극 바닥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뮤지컬도 기획해서 꽤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무슨 계기가 있던 것인지는 몰라도 로렌 바콜은 업계에서 평판이 꽤 좋았습니다. 뭔가 지적이고 능력있고 젠틀한 이미지가 있었는데요. 그녀가 나름 정치색도 드러내고 소신 발언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뭔가 요즘 식으로 개념 연예인 이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도 있었고 당시 미국 분위기가  블랙리스트 만들어서 소위 좌파 연예인 부당 대우를 받고 그런 것 같은데요. 로렌 바콜은 자유주의 민주당 소속을 강조하면서 공화당을 끔찍하게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외모 만큼 연기를 아주 많이 잘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굵직한 상을 많이 받은 것을 보면 영화쪽 좌파 카르텔 작용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도 영화판이 좌판 일색이지만 당시 미국과 한국은 다소 차이점이 있습니다. 


미국의 좌파 로렌 바콜은 자유를 외쳤지만 한국은 보수당이 자유를 외치고 있고 한국의 좌파 민주당은 전체주의를 지향하고 있잖아요? 국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진보적이라고 하는 것이 좀 아이러니합니다.


가만보면 여성 정책, 다문화 이런 좌파적인 무브먼트에 자유를 외치는 것은 국힘당이 더하고 있잖아요? 한국의 민주당은 무늬만 민주당이지 자유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로렌바콜은 미국의 민주당원이었지만 그녀가 항시 외쳤던 것은 오로지 자유였습니다. 


험프리 보가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로렌 바콜


로렌 바콜은 1961년 재혼하게 되는데요. 주연급 배우 제이슨 로바즈와 우여곡절 끝에 맥시코에서 결혼하여 약 9년 동안 살다 헤어집니다. 사는 동안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 같은데요. 제이슨도 술꾼이었나 봅니다. 로렌 바콜은 이혼 사유를 제이슨의 음주를 탓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보다 로렌 바콜이 제이슨과 만나 결혼한 이유는 그가 험프리 보가트를 닮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사생활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비교적 건실하게 아이들 키우면서 배우 생활에 충실하면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산 배우 로렌 바콜은 독특한 생김새에 비해 삶의 궤적은 비교적 평탄해 보입니다. 


오로지 험프리 보가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했을 때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지 이후에는 그저 다사다난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딱히 박진감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그녀도 쭈구렁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연기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천성이 성실하고 매사 꾸준한 성향인 것 같습니다. 






로렌 바콜은 리즈 시절 반짝 하고 아름다움을 빛냈을 뿐 이후에는 외모에 큰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화장을 안 한 배우로도 유명하지만, 알고보면 자연스러운 화장을 한 것이지 생얼로 다닌 적은 없습니다. 키가 크고 체형도 밋밋한 편이라 다소 뻣뻣한 인상을 주는데요. 육감적인 매력이 없는 대신 그녀는 눈빛이 상당히 매력있는 배우였습니다.


특히 정면보다는 측면 시선이 더 예쁘고 매력적이었는데요. 정면 이미지는 전형적인 미인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재클린 케네디 여사보다 조금 예쁜 정도라고나 할까요? 사람마다 취향이 있겠지만 로렌 바콜은 오로지 곁눈질을 하거나 측면 얼굴만 예뻐 보입니다. 아마도 곁눈질 시선으로는 세계 최강으로 아름다운 배우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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