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헐리우드 최고 여신 리타 헤이워스의 비극적인 인생 궤적을 따라서

1918년 뉴욕 부룩클린 태생의 리타 헤이워스는 스페인 태생의 댄서 부부의 딸로 어린 시절부터 나이트 클럽에서 공연하다 배우가 되었고 1940년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핀업 걸이 되었습니다. 



리타 헤이워스의 불행의 시작은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도 유명한 댄서였고 대를 이어 댄서가 된 리타의 아버지는  끔찍한 인간 유형이었습니다. 아내를 대신해 어리고 예쁜 리타를 마치 아내인양 분장하고 데리고 다니며 댄스 파트너로 삼았고, 그 와중에 진짜로 착각을 했던 것인지 딸을 아내처럼 여기게 됩니다. 


리타의 아버지는 리타를 12살에 학교를 자퇴시키고 미국보다 법이 덜 엄격한 멕시코에 가서 지저분한 카지노와 나이트 클럽 등지에서 딸과 함께 댄스를 추며 돈을 법니다. 아버지의 통제와 고압적인 태도는 물론 성적 학대도 서슴지 않았고요. 엄마도 남편을 말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무자비하고 짐승같던 리타의 아버지는 돈을 벌면 술과 도박으로 탕진하였는데요. 리타는 이런 아버지에게 벗어나고자 18살에 자신보다 3배나 나이차가 나는 남자와 결혼을 강행합니다.

아마 이것도 아버지가 모종의 딜을 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아버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던 그녀의 첫 남편은 자동차 딜러 저드슨이었습니다. 



리타의 첫 번째 남편 저드슨



저드슨은 리타 마가리타라는 본명을 리타 헤이워스로 바꾸고 남편보다는 매니저, 아니 포주 역할에 충실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툭하면 리타를 때렸고 가뒀고 그녀를 이용해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드슨은 기회를 잡았고 콜롬비아 스튜디오에서 악명 높은 책임자 해리콘을 만나 7년 계약을 맺습니다. 해리콘은 저드슨보다 더 끔찍한 남자였습니다. 저드슨은 리타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검은 머리를 밝고 빨간 머리로 바꿔 놓았고 이는 리타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긴 합니다.


또한, 당시에는 전기 분해로 헤어라인을 바꾸는 성형이 있었는데요. 해리콘은 그 끔찍한 수술을 리타에게 강행하였고 결과적으로 수술은 대성공하여 이후 리타의 분위기는 확 바뀌고 훨씬 미국적이고 세련되고 섹시하게 변했습니다. 그에 따라 그녀 인기도 치솟았고요. 


그리고 해리콘은 그녀가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안 해준다는 이유였는지 어쨌는지 그녀를 거의 감금모드로 만들며,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며 감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리타 앞에서 볼 일을 보는 일을 서슴지 않으면서 천박의 끝을 보여줍니다. 훗날 리타는 해리콘을 회상하면서 괴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톱스타가 된 리타 헤이워스


1940년대 리타는 시대의 잇걸이 되면서 특히 미국 군인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됩니다. 오죽하면 당시 핵실험 무기였던가 암튼 무기 이름을 리타로 지었다고 하는데요. 이걸 또 리타는 항의 기자 회견을 하려다 해리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군인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아무튼, 리타가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저드슨은 돈독이 올랐고 리타는 그와 헤어지기 위해 막대한 돈을 주었고 여차하면 그를 주먹으로 팰 수 있는 그보다 더 센 남자 빅터와 사귑니다. 빅터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리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오손 웰즈



오손 웰즈는 당대에도 후대에도 미디어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천재 영화 감독입니다. 당연히 지적이면서 또라이였기도 했지만요. 오손 웰즈는 라이프지에 실린 리타 헤이워스를 보고 완전히 반했고 리타도 오손 웰즈를 그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게 됩니다. 


불꽃같이 눈이 맞은 두 사람은 1943년 결혼했지만 이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2살에 학교를 그만둔 리타에게 남은 것은 본능 뿐이었겠지만 애초부터 오손 웰즈가 리타에게 섹시함 이상의 뭔가를 바랐다는 게 더 웃기는 노릇이죠. 이 논란많은 커플은 1946년 공식적으로 헤어졌고 그 사이에 오손 웰즈는 숱한 바람을 피우고 다닙니다. 


리타도 맞바람을 피우긴 했지만요. 오손 웰즈 만큼은 아닌 것 같고요. 그녀의 오랜 친구로 남은 글렌 포드가 오손 웰즈의 정적으로 으르렁 거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글렌 포드와 리타는 40년 넘도록 우정을 유지했다고는 합니다.



리타의 인생캐 길다


올리비아 핫세도 줄리엣 이미지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듯 리타도 길다란 영화의 길다를 맡은 후 마법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딱히 그 이미지에서 벗어날 이유도 없어 보였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특히 남성들의 잠자리 대상으로 환상을 품게 만든 리타는 무슬림의 정신적 지도자 아가칸의 아들 알라칸도 홀려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이 성사되는데요.


칸에서 만나 결혼한 모나코 공국의 그레이스 켈리와 스토리가 비슷하지만, 그런데 대체 알라칸은 어느 나라 왕자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리타는 그레이스 켈리보다 먼저 헐리우드의 공주가 되었다는 사실.


그러나 알라칸은 당시 유부남 신분이었고요. 이혼하고 리타와 재혼은 했지만 희대의 난봉꾼이었다는 사실을 리타는 왜 알지 못한 걸까요. 후회해도 늦은 것이 임신을 해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도 오래 가지 못하였고, 귀책 사유를 알라칸에게 물어 둘 사이에 낳은 딸 자스민 공주도 키울 수 있게 되었고 그랬답니다.


끝나지 않은 비극



박복한 리타의 남자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난봉꾼과 헤어진 후 이어서 만난 남자는 헐리우드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 가수 딕 헤임스와 결혼하였고요. 리타는 그의 빚을 전부 갚아주면서 고통의 늪에서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 남편도 보잘것없는 제임스 힐이었는데 그는 리타를 패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리타를 비난하는 등 말로 리타를 괴롭힌 최악의 남자였습니다.

리타의 말년은 초라하고 비참했습니다. 알콜 중독인 줄 알았더니 알츠하이머였고 당시 이 병에 대한 정보가 미흡했던 터라 그녀 덕분에 알츠하이머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고요.

그러나 그녀의 유일한 보람이 있었다면 그녀의 둘째 딸 야스민 칸 공주가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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