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애자들에게 희생당한 나탈리 우드의 비극적인 죽음

아역배우 출신으로 최고 성공한 미국의 국민 여동생 나탈리 우드는 4개의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배우입니다. 러시아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에서 1938년 7월 20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81년 11월 29일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엄마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던 나탈리 우드






가난한 집안에서 나탈리 우드는 유일한 출구로 보였고 양극성 장애 기질이 농후하다고 판단되는 나탈리 우드 엄마의 극성으로 아역스타가 되는 데 성공합니다. 엄마의 노력도 있었지만 워낙 예쁘고 깜찍하며 연기를 잘했기 때문에 대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어린 시절에 두각을 나타내고 인기가 많았던 것은 사랑스러운 외모도 크게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표현력과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우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녀의 엄마가 그녀가 보는 앞에서 나비를 찢어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녀 엄마는 당시 망상이 심하며 딸에 대한 통제가 심하기로 헐리우드 바닥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자란 환경을 보면 딱히 놀랄 일도 아닙니다. 알콜 중독자의 아버지에 가족 폭력을 기본 베이스로 한 상태에서 엄마의 딸에 대한 과한 애착 및 통제가 심했는데요. 엄마 입장에서는 딸 나탈리가 집안의 유일한 돈 나올 구멍이었기에 더욱 집착이 심했던 걸로 보입니다.


9살때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역 스타로 성공했고 1956년에는 당시 최고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와 잠시 교제를 한 적도 있습니다.  1957년 12월초에는 배우 로버트 와그너와 결혼하였고 1961년에는 별거 선언 그리고 1962년에는 공식으로 이혼하였습니다. 1969년에는 3년동안 교제한 영국 프로듀서 리차드 그렉슨과 결혼하여 딸 나타샤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헤어지고 1972년 로버트 와그너를 다시 만나 재혼하여 딸을 낳았습니다.



파란만장했던 나탈리 우드의 삶



나탈리 우드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것은 지극히 평범해 보일 정도로 어린 시절에 끔찍한 일들을 많이 겪으며 성장하였습니다. 불과 15살에 당대 최고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것부터 고등학생 때  또래와 교제하였지만 헤어지자고 하니 자살 소동을 했는지 자살을 했는지 등의 사건부터 십대 때 배역을 따내기 위해 감독 니콜라스 레이와 성적 접촉을 하는 등 마릴린 먼로 못지 않게 추행과 연루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관계는 나탈리 우드의 엄마가 그녀를 성공시키려는 야욕으로 그녀를 잔뜩 꾸미고 시나트라에게 갖다 바쳤다는 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놀라기에는 이릅니다. 결혼 전부터 동성애자라는 의혹을 솔찮게 받아온 로버트 와그너가 나탈리 우드와 결혼하면서 동성애 의혹은 싹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와그너는 과할 정도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는데요. 마치 한 뚝배기 하실래요 할리씨가 그토록 보수적인 면모를 보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 봅니다. 


그리고 나탈리 우드가 로버트 와그너와 이혼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그의 애인이 여성이 아닌 남자 그것도 자기집 집사랑 관계한 것을 직접 목격하였고 나탈리 우드는 남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침묵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영국인 출신 집사도 말이 집사이지 로버트 와그너가 앉혀놓은 조강지처 다음 조강지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한 나탈리 우드가 16살 때 누군가에게 끔찍한 성폭행을 당하고 과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한 그녀를 엄마와 여동생 라나가 목격했음에도 당시 너무 거물이라 감히 말하지를 못하였고 그가 죽으면 밝히겠다고 한 것이 2020년이었습니다. 커크 더글라스가 103세의 나이로 2020년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16세에는 44세의 니콜라스 레이와 자의적 연애도 하였으며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탭 헌터와도 데이트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탭 헌터는 1950년대 10대들의 우상이었지만 2019년에야 게이였다는 사실을 커밍아웃합니다. 아마 로버트 와그너가 나탈리 우드를 낙점하여 그녀와 결혼한 것도 탭 헌터의 귀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적인 의심이 듭니다.


게다가 나탈리 우드는 로버트 와그너를 오랫동안 좋아했었고 18세에 첫 데이트를 한 후 다음 해에 결혼합니다. 로버트 와그너는 나탈리 우드와 8살 차이가 났고 그녀의 엄마는 그의 성정체성을 의심하였고 일부 언론도 그를 의심하였으나 로버트는 완강히 부인하였고 나탈리 우드는 나중에 알았어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둘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나탈리 우드의 두 번째 남편


동화속 왕자님이었던 남편의 실체를 알게 된 후 이혼한 다음 1969년에 영욱 프로듀서 리처드 그레그슨과 재혼하여 딸을 낳았지만 전 남편이 집안의 집사와 바람을 피웠다면 이번에는 비서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안 후 이혼합니다.


이미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던지 1972년 나탈리 우드는 자신의 어릴 적 동화속 왕자님에 대한 환상을 다시 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로버트 와그너를 다시 만나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게 있었습니다.



로버트 와그너는 처음 헤어질 때도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와의 불륜을 의심하고 핏대를 세웠는데 이번에도 비티에 대한 바그너의 격렬한 질투는 다시 재생될 거라고 했습니다. 로버트 와그너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지만요. 지금 생각하면 로버트 와그너가 워렌 비티도 좋아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이번 질투는 당시 라이징 스타 크리스토퍼 월켄에게 이동합니다.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양성애자라는 의심이 있던 월켄은 나탈리 우드의 사망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로버트 와그너와 절친이었고 나탈리 우드와 같은 작품에 출연한 후였습니다. 




의문사 사건의 발단


사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981년 어느날 어떻게 모였는지 모르겠으나 크리스토퍼 월켄과 나탈리 우드 그리고 로버트 와그너가 휴가를 떠납니다. 전날 셋은 진탕 술을 마셨고 레스토랑 웨이터의 말로는 나탈리 우드와 크리스토퍼 월켄이 테이블 아래로 손을 잡고 있었다고 했고 게이였던 매니저는 크리스토퍼 월켄과  로버트 와그너도 그들만의 묘한 제스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나탈리 우드는 술을 마시고 구명정에 올라타려나 물에 빠졌고 얼굴을 부딪혔고 이후 익사체로 발견됩니다. 그녀의 몸은 멍투성이었고 여동생 라나의 집요한 추적으로 30년이 훨씬 지나 익사 외 의문사로 판명이 나고 그녀 죽음의 배후에 남편 로버트 와그너가 있음을 강력하게 의심하였지만 알았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라 소용없었습니다.


사건에 관해서 당시 로버트 와그너는 자신과 월켄이 말다툼을 벌여 그녀가 자리를 떠난 후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정황상 오래 전 그가 집사와 그러고 있는 상황을 나탈리 우드가 목격하고 뛰쳐나왔듯 두 번째 못 볼 꼴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크리스토퍼 월켄은 2023년 80세이고 로버트 와그너는 93세로 현재까지 정정하게 살아있지만 나탈리 우드는 이들의 사랑 놀음에 희생된 제물로 사라졌습니다.



에피소드를 추가하자면 나탈리 우드의 엄마는 러시아 혁명 후 중국으로 도피하였고 임신 전 하얼빈의 한 점쟁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인이 탄생할 것이라는 것과 43세가 되면 그녀가 어두운 물속에 있을 거라고 예언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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