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터 걸 창시자 라나 터너의 쇼킹 라이프 스토리

마릴린 먼로 사후 제인 맨스필드는 여세를 모는데 실패한 편이지만 원조 섹시 스타 진 할로우의 사후에 등장한 라나 터너는 매우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미국의 스윗걸보다는 스웨터걸로 명성을 얻었고 평생 스웨터걸 이미지에 갇혀 산 라나 터너의 라이프 스토리입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시작한 배우 라나 터너






유독 20세기에 활약했던 헐리우드 배우들은 스크린 속 삶보다 일상이 더 다채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라나 터너는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단연코 압도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15세 때 학교를 빼먹고 헐리우드의 선셋대로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인지 콜라인지를  먹으러 갔다가 영화 전문 잡지 발행인의 눈에 띄게 됩니다. 항간에는 술을 마시러 갔다는 말도 있었지만요. 그의 눈에 라나 터너는 살아있는 진 할로우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는데요. 당시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체형도 있었지만 그리스 신화 속 등장하는 님펫 요정을 그녀에게서 느꼈던 것 같습니다.



라나 터너의 불행한 가족사



세기를 대표하는 미인들 중에는 어마무시하게 부유하고 격이있는 집안 태생도 있지만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처참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배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라나 터너는 단연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불우한 태생과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라나 터너는 사기꾼에서 구두닦이 그리고 광부로 산 18세 아버지와 16세의 미용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가난한 외동딸이었습니다. 가족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직업이 광부였지만 본업보다는 도박에 소질이 있어 그 돈으로 가족을 부양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어느 날 도박에서 크게 한 판을 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의 아버지는 강도에게 둔부를 가격 당하여 살해되었습니다. 라나 터너 나이 9살 때였습니다.






스캔들의 여왕


가난하고 놀기 좋아하고 방치되고 얼굴까지 예쁘면 요조숙녀처럼 크기 힘들다는 것을 라나 터너는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남다른 매력을 배팅할 줄 알았습니다. 배우 캐스팅 제안을 했을 때 그녀의 대답은 모르겠다며 엄마에게 물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160cm의 키에 34-26-38의 글래머러스한 바디에 아이 같은 얼굴과 오묘한 표정으로 현대판 베이글녀의 원조 여신이던 그녀는 1937년  첫 촬영한 영화에서 몸에 딱붙는 스웨터를 입고 나온 뒤 국민 여동생, 만인의 연인,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스웨터 걸이란 별칭을 얻게  되었고 이후 그녀처럼 가슴이 풍만한 섹시한 배우들에게는 스웨터 걸이란 별칭이 붙게 된 겁니다.




그리고 라나 터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먼저 일곱 명의 남자 그리고 8번의 결혼이라는 기록을 세운 인물입니다.  테일러는 만나는 족족 결혼이라도 했지만 라나 터너에게 결혼은 그저 양념일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습니다. 배우만 섭렵한 것이 아닌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영화 감독들, 뮤지션, 제작진, 건달, 권투 선수 그리고 역시나 빠질 수 없는 하워드 휴즈부터 케네디 대통령까지 대충 세도 70명도 넘는 남자들과 교제를 했다고 합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태어난 배경도 비슷했던 에바 가드너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는데요. 아이러니하게 둘 사이에 남자 관계도 많이 겹쳤습니다. 터너의 첫 남편은 에바 가드너의 두 번째 남편인 아티 쇼였으며 에바 가드너의 절대 사랑 프랭크 시나트라하고는 유부남 시절에도 이혼 후에도 만남을 가졌고 하워드 휴즈와도 잠시 만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에바의 첫 남편 미키 루니와도 스캔들이 있었다네요.






원래 그녀의 꿈은 한 남자와 결혼하여 일곱 명의 아이를 낳는 것이었는데 번의 결혼에 아이는 도박사이던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녀의 문제적 딸 셰릴은 1943년 7월 25일 영화 배우 스티브 크레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셰릴의 첫 돌 이후 크레인은 떠났고요.




하지만 그녀의 놀라운 연애 및 결혼 사가는 딸의 살인 한번으로 다 덮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만나는 남자들과 결혼하고 이혼하고 교제하다 돈만 뜯기고, 버림 받고 맞고 볼썽사나운 일들의 연속 속에 라나 터너의 딸에게도 재앙이 덮치는데요. 라나 터너의 몇 번째 남편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영화 타잔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바커와 결혼해서 살 때 10살된 쉐릴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것이 훗날 밝혀졌습니다. 이런 불안정하고 파렴치한 일들이 쉐릴에 정서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말 할 것도 없었을 테고요.



스웨터 걸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거듭난 가운데 닥친 재앙


이런 사실을 알았던 것인지 바커와 헤어졌고 똥차를 보내자마자 더 최악인 남자를 라나 터너가 데려오게 됩니다. 그녀는 몰랐다고 했지만 유명한 조폭 출신의 자니 스탐파나토와 결혼한 것인데요. 


그녀의 딸 쉐릴 크레인은 14살의 나이에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터너는 당시 헐리우드에서 유명한 조직폭력배 자니 스탐파나토를 만나고 있었는데요. 쉐릴이 침실에서 그를 가차없이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딸의 말은 엄마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하였고, 실제로 그는 터너를 심하게 폭행해서 영국에서 추방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딸 쉐릴에게 추행도 서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딸은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명성은 실추될대로 된 상태이고 그런 이슈를 덮고자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고 몇 번 더 결혼하고 이혼했지만 그녀의 경력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성이 악착같고 부지런했던지라 어디든 불러주는 곳은 가서 일을 했습니다.


딸과도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으며 어린 나이에 큰 일을 겪은 쉐릴도 정신이 온전치 않아 알콜에 약물에 음란한 행위는 물론 교통 사고까지 내며 문제적 십대를 보내다 성인이 되어서는 철이 들고 잘 살게 된 것 같긴 합니다.



사실 진실은 모녀만이 알 것이지만, 법정에서는 누군가 조니와 라나 터너 모녀가 삼각관계를 암시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고요. 어떤 기사에서는 가뜩이나 폭행을 일삼는 조니 때문에 언젠가는 저 손에 죽겠구나 싶은 공포감도 있었지만 어느 날 조니와 셰릴이 한 방에 있는 것을 본 후 라나가 죽였고 그에 대한 책임을 셰릴이 통감하고 죄를 뒤집어 썼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모녀가 살아남을 방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만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밝혀졌고요.






그러나 이 모녀 스토리의 후반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말썽쟁이 딸 셰릴은 정신을 차려 코넬 대학 경영학부에 들어갔고 훗날 부동산업자로 크게 성공하고 여러 권의 책도 출간하면서 성공적인 여성의 삶을 살았고요. 라나 토너도 재기에 성공하며 대중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와중에 셰릴은 LGBT 수호자가 되었고 라나터너는 지속적으로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요.


평생 흡연을 해왔던 라나 터너는 1994년 후두암 진단을 받았고 1995년 6월 캘리포니아의 캘버시티에서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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