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말괄량이 캐서린 헵번의 조강지첩? 스토리

1930년대 지성과 미모 그리고 연기력으로 승부한 배우가 스웨덴 출신으로 잉그리드 버그만이 있었다면 미국에는 캐서린 헵번이 있었습니다. 캐서린 헵번은 미국의 자랑이자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여배우였습니다. 또한, 캐서린 헵번의 조강지첩 스토리도 꽤 유명하죠.



절대적이고 완벽한 말괄량이 페미니스트 캐서린 헵번






1930년대를 대표한 배우 캐서린의 이름 앞에는 항상 위대한과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1907년 5월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부유하고 똑똑한 집안에서 태어난 캐서린 헵번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진보좌파 리더의 딸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보기 드물게 배운 부모님 아래서 엄마는 여성의 참정권을 외친 박사님이셨고 아버지는 창녀촌을 다니며 성병의 위험성을 알려주고 다닌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식들 교육도 자유로우면서 지적인 교육을 하셨겠죠.



가정의 불행 그리고 모순



그러나 마냥 행복한 집안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캐서린 외가를 비롯해서 친가 모두 자살 유전자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의사가 되길 원했지만 성적이 부진했던 것인지 유전자가 작용해서인지 집안에서 목을 매서 자살했습니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명망높은 집안의 아들이 자살했다는 것이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기에 부모는 사고사로 무마하려고 했습니다만 실패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후, 부모는 절망했고 바로 아래 동생 캐서린 헵번은 이후 오랫동안 불안 장애에 시달립니다.





부모의 유전자를 닮아 똑똑하고 그리고 운동도 잘해서 못하는 것이 없는 매력덩어리였고 누구보다 왈가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더 밝아진 것인지 어쨌든 변한 성격이라고 하니 오버한 측면도 있는 것 같고요.



또한, 오빠의 병적 증상을 연구하고 싶어서 의대를 가고 싶었으나 의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고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여 학위를 땁니다. 대학에서 연기에 빠져 지냈는데, 당시에는 4대 명문 여대로 알려진 브린마 대학은 공부를 잘해야 연극 동아리도 할 수 있었던지 열심히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대학은 엄마도 졸업한 곳이라고 합니다. 캐서린은 졸업 후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 영화 배우가 됩니다.






그녀의 첫 번째 아카데미상


캐서린 헵번은 1933년 영화 모닝 글로리로 첫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이후 세 개를 더 받습니다. 평소 생활 태도는 구속과 규칙에 얽매이는 것도 싫어하고 배우임에도 화장도 전혀 안 하고 바지만 입고 다녀서 당시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여성 스포츠가 활성화되지도 않았던 시기에 골프며 테니스도 거의 선수급으로 잘했으니 이렇게 역동적인 여성이 또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보통 공부를 잘하면 운동을 못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았는데 미국은 확실히 만능 엔터테이너가 많은 것 같습니다.




3대 바지 미인 캐서린 헵번


1930년대 당시 바지를 입고 다닌 세 배우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마를레네 디트리히 다음으로 캐서린 헵번이었다고 합니다. 매니시 룩의 창시자라고 불릴 정도로 그녀가 치마를 입은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보이시하고 시크하고 활동적인 스타일인 것을 보면 진정한 말괄량이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배우들과 달리 그녀는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던 것 같고요. 결혼도 하고 연애도 많이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주도적인 연애였을거란 확신이 드네요.


그러나 캐서린 헵번은 오빠의 죽음 이후 한번도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을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녀의 생얼만 봐도 잠을 도통 못 잔 것 같이 푸석푸석 일색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그녀의 심신을 안정시킨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문제는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 였습니다. 뭔가 푸근하고 선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둘이 케미가 잘 맞았나 봅니다. 마치 한국 드라마 전원일기 속 최불암과 김혜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커플은 실제 연인이 되었고 모두가 다 아는 관계임에도 절대로 이혼은 하지 않은채 이십년도 넘게 소위 조강지첩의 삶을 살게 됩니다.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의 로맨스




트레이시 입장에선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던 것이고 캐서린 헵번은 아픈 아이를 키우는 그 남자가 측은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둘은 육체보다 정서적으로 더 끌렸던 것 같고 아내와 별거 중이었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절대로 이혼은 하지 못하겠다는 이상한 논리로다 둘은 같이 살게 됩니다. 


그러다 트레이시가 심장마비 증상이 왔고 곁에 있던 캐서린이 응급조치를 하고 구급차를 불렀으나 때는 늦은 것 같습니다. 일련의 수습 후 캐서린은 집을 나섰고 트레이시의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트레이시는 67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장례식 이틀 후 캐서린은 트레이시의 아내를 만나 조문했다고 합니다. 둘이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리고 캐서린 헵번은 이후로도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지냈고 96세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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