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 스타 아무로 나미에의 뷰티 앤 패션 라이프 스타일 스토리
오늘날 한국이 걸그룹 강국이 된 저변에는 앞서 일본이 토대를 닦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국내 머리 좋은 기획자들은 재빨리 일본 스타일을 카피하여 보다 더 근사하게 업그레이드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아마도 여가수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 이는 바로 일본의 아무로 나미에가 아닌가 합니다.
실제 가수 보아는 아무로 나미에를 벤치마킹하여 키운 가수이고 이효리는 아주 대놓고 아무로 나미에 패션 스타일을 따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면 이제 여가수 계의 거의 최초 호모 사피엔스 종족 아무로 나미에의 뷰티 앤 패션 스타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무로 나미에의 출생 배경과 성격
아무로 나미에는 1977년 9월 20일생입니다. 일본 오키나와 지역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태생은 부유했지만 그녀가 4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아무로 나미에는 엄청 가난하게 살게 됩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가난 탓보다는 선천적으로 우울한 기질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요. 끼는 많지만 유난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가난 때문에 주눅이 많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로 나미에가 연예인이 된 계기
그녀는 십대 초반에 친구를 따라 연기학원에 놀러가게 됩니다. 그러다 학원 원장의 눈에 들면서 학원비도 안 받고 데뷔까지 지원받게 됩니다. 학원 원장의 탁월한 안목이 놀랍습니다. 그렇게 1992년 십대 후반에 걸그룹 몽키즈란 그룹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해체로 이어집니다.
1995년 성공적인 솔로 데뷔
아무로 나미에는 1995년 솔로로 데뷔한 후 스타가 됩니다. 홀로서기에 완전히 성공한 아무로 나미에는 일본 제이팝을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로 역사를 쓰게 됩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곱상하면서 일본 특유의 귀엽고 혼혈스러운 이미지가 가미된 얼굴에 또한, 일본인 같지 않은 완벽한 체형을 소유했기에 배우가 되었어도 성공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작은 체구에도 무대 위에서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남다르게 세련된 의상 스타일로 일본 일대 나무로 스타일 열풍을 몰고 옵니다. 이웃나라 한국까지 아무로 스타일이 전파된 것은 물론이고요.
아무로 나미에의 신체 비율
아무로 나미에는 키가 158cm의 비교적 작은 키에 속했지만 얼굴이 작고 다리가 길어 비율 여신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비율이었는데요. 서구적 마스크까지 겸해서 찐 일본인은 아니겠거니 했는데 역시나 외할아버지가 백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그렇게 서구적 체형과 동양적 얼굴의 조화를 잘 이룬 아무로 나미에는 갈색으로 태닝한 피부에 미니 스커트 그리고 롱부츠가 마치 트레이드 마크처럼 즐겨 입고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특유, 아니 아무로 특유의 독특한 갸루 화장 스타일로 뷰티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물론 그녀의 뷰티와 패션 스타일은 덤이었고 메인은 그녀의 음악 실력이었지만요. 귀도 즐겁고 눈도 즐겁게 해준 아무로 나미에에게 열광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노릇일 정도였죠.
보아와 아무로 나미에의 비교
노래는 둘 다 어느 정도 잘 부른다고 치고 춤은 보아가 보다 훈련을 잘 받은 티가 나게 잘 춘다고 해도 외모나 카리스마 등에서 보아와 아무로 나미에는 비교 불가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키가 작았지만 보아의 얼굴 크기와 다리 길이는 아무로 나미에에게 도저히 도전 불가입니다. 물론 아무로 나미에 이후 일본에서 데뷔하여 전역을 강타하며 최고 스타가 되었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스마트함에 반해서였지 그녀가 아무로 나미에보다 비주얼이 월등히 나아서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거기에 아무로 나미에의 스타일만 흉내 낸 이효리는 언감생심 천한 기운만 난무했지 아무로 나미에의 멋진 섹시함은 절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패션 감각은 물론이고요.
노래와 비주얼로 아시아를 평정한 아무로 나미에
현재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여자 가수는 아이유일 겁니다. 아이유는 보아의 스마트함과 출중한 가창 능력 그리고 아무로 나미에와는 상반되지만 비교 우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청순하고 롤리타적인 매력을 풍기며 배우로도 성공한 최고의 스타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에는 아무로 나미에가 있었다면 한국은 보아나 이효리 따위가 아니라 아이유로 견주어야 얼추 납득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기 관리는 아이유가 훨씬 잘 한 것 같긴 합니다.
스무 살에 결혼 발표한 아무로 나미에 불행의 시작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얻은 아무로 나미에는 1997년 can you celebrate로 엄청난 히트곡을 발매하였는데 결혼식 축가 1순위 노래를 불러서 그런지 스무 살에 난데없는 결혼 발표를 합니다. 게다가 백댄서 출신에 15살이나 많은 샘이란 작자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임신까지 했다고 하니 일본 열도가 난리가 났습니다. 결혼 발표하는 날 그녀가 입고 나온 버버리 미니 스커트는 절판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고, 다 죽어가는 버버리 브랜드를 아무로 나미에가 살려놨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샘은 대체 어떤 남자였을까요? 샘은 알고 보니 집안 대대로 의사가 나온 나름 로열 패밀리였으나 정작 그는 집안의 문제아 혹은 이단아였던 거죠. 그렇게 결혼 발표를 하고 1998년 5월 아들 하루토를 출산합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I have neer seen으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9년에 아무로 나미에의 엄마가 금전적인 문제로 재혼남의 동생 즉 도련님에게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아무로 나미에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몇 년 후 2002년 샘과 이혼마저 하게 됩니다.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도 아무로 나미에 주변에는 파파라치가 항상 따라다니며 일상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일본 최고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2007년 완벽한 재기에 성공한 그녀
아무로 나미에는 2007년 play로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2008년 연달아 히트곡을 발매하면서 퀄리티며 기획 모두 신선한 평가와 함께 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2008년 60년대, 70년대, 80년대로 각 시대별로 인기있던 팝 세 곡을 리메이크하여 대중적인 성공을 한 것인데요. 이와 같은 방식은 한국에서 아이유가 그대로 따라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아이유뿐 아니라 빅뱅 등 일본 맨날 훔쳐보는 대형 기획사에서 다 따라했겠죠. 물론 다 성공했고요.
슈퍼스타에서 슈퍼우먼으로 호평 받은 그녀
아무로 나미에는 슈퍼스타에서 슈퍼우먼으로 호평을 받습니다. 홀로 아들도 잘 키우고 노래면 노래 패션이면 패션 다 성공했으니까요. 그녀는 무대 위에서 노래 이외는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는 걸로 알려져있습니다. 평소 성격이 너무 샤이해서 간혹 잡지 촬영을 하는 것 이외에는 일절 방송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흔에 은퇴한 아무로 나미에
2018년 9월 자신의 마흔 살 생일을 앞둔 그녀는 은퇴를 예고합니다. 또 한번 일본인들이 난리가 납니다. 아무로 나미에가 은퇴를 결심한 것에 팬들이 만류할 수 없던 이유에는 그녀 성대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나이를 먹으면서 성대에 문제가 생겨 창법도 바뀌었는데 흉성과 두성으로 부르던 스타일에서 비음이 심해졌습니다. 그밖에 폐렴에 대상포진 등 마흔병이 제대로 걸리면서 저질 체력 시전하니 쉬라고 할 수밖에요.
그녀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파파라치를 통해 그녀의 근황을 알 수 있습니다. 우연히 찍힌 그녀 모습은 전부다 화보 뺨치는 수준이라 찍히는 족족 그녀가 입은 스타일이 품절 대란이 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남은 생애도 줄곧 멋지고 행복하고 아름답길 기원합니다. 참고로 그녀의 전 남편 샘은 지속적인 사랑 난봉꾼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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