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시대 아이콘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잔느 앙투아네트 일명 퐁파두르 부인

역사에 무지한 탓이어서 여태까지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은 마리 앙투아네트인 줄 알았더니만 그보다 앞선 루이 15세의 애첩 잔느 앙투아네트가 먼저였고 최고였다네요. 게다가 여태 마리 앙투아네트 초상화인 줄 알던 그림도 잔느 앙투아네트인 것도 많았었네요. 공부하는 차원에서 마담 퐁파두르로 더 알려진 그녀에 관한 라이프 스토리를 전하겠습니다.


퐁파두르 헤어 스타일 창시자 잔느 앙투아네트 스토리






근세 시대 유럽 왕실에는 코르티잔이라는 제도 아닌 제도가 있었는데요. 상류층 남성의 공인된 정부를 일컫습니다. 그중 최고는 왕의 정부가 되는 일이었을테고요. 역사상 최고의 왕의 정부로 일컫는 잔느 앙투아네트 푸아송 드 퐁파두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06년에 그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마담 퐁파두르도 개봉했는데요. 이 영화는 아직 못 봤지만 한번 봐야겠습니다.


그녀는 1721년 12월 29일 평민이지만 엄청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그녀는 5살 때 부터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기 위해 우르술린 수녀원에 들어갑니다. 아버지는 무슨 횡령죄에 연루되었던 것인지 부재가 길었고 거의 엄마 손에 자라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남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지만 퐁파두르는 건강이 좋지 않아 9살 때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집에 머무르는 동안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당시 유명한 점쟁이에게 데려갔다고 하는데요. 


점쟁이는 그녀에게 훗날 왕의 심장 위에 군림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답니다. 이후 그려는 작은 여왕이란 의미의 르넷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작정을 한 것인지 루이 15세의 정부가 되기 위해 남다른 관리를 받게 됩니다. 최고의 교사들을 불러 사교육을 받으며 춤, 그림, 연극, 등 모든 교육을 받게 됩니다.


퐁파두르의 결혼과 왕을 향한 유혹 시전



퐁파두르는 19세에 샤를 기욤과 결혼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은 퐁파두르는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아들은 어린 나이에 사망하고 맙니다. 퐁파두르는 파리의 유명한 살롱을 드나들며 당시 수많은 문화 엘리트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일종의 사교계 여왕으로 등극한 것이죠.





일찍부터 그녀의 명성을 들은 루이 15세와 퐁파두르의 만남은 언제 만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그리고 1744년 퐁파두르는 왕의 환심을 얻기 위해 예쁜 옷을 입으며 왕 주변을 알짱알짱 거리는데요. 그 와중에 루이 15세의 정부 샤토루가 사망합니다. 샤토루는 넬슨 후작의 막내딸이었고 위로 언니 네 명이 루이 15세의 정부였다고 하니 대단한 집안인 것같습니다. 


그녀는 2년 동안 왕의 정부로 지내다 죽고 뒤를 이어 퐁파두르가 차지하게 됩니다. 아무리 집안에 돈이 많아도 철저한 계급 사회인터라 정부라고 할지라도 평민 출신이 정부가 되는 일은 없었는데요. 그리고는 퐁파두르는 남편과 결별하게 됩니다. 퐁파두르 남편은 그녀를 너무 사랑하였고 그녀를 뺏을 사람은 오직 루이 15세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결국 왕에게 아내를 뺏기고 마네요. 



왕의 정부 대신 뛰어난 지략으로 왕의 조력자가 된 퐁파두르 부인





1750년에 퐁파두르는 왕과의 육체적 관계는 종료하고 조력자로서만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이유는 그녀의 허약한 신체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백일해부터 감기 기관지염에 각혈 두통부터 시작해서 왕의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하는 등 건강이 매우 안 좋았기 때문입니다. 

왕의 정부가 애도 못 낳았는데 육체적인 매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버림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퐁파두르 입장에서는 총명한 두뇌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마 그 뒤로는 왕의 채홍사 역할을 하면서 왕을 만족시켰으니 왕도 자신의 정부 중 가장 훌륭했다고 칭찬했다고 하는데요. 육체적 관계 없이도 평생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유지한 최고의 애첩이 아니었나 합니다


왕비와도 관계가 좋았던 퐁파두르 부인


퐁파두르는 1752년 10월 12일 공작부인이 되고 1756년에는 여왕의 시녀 즉 비서 같은 역할을 맡고 나름 행정 전반의 일도 잘해서 국내외 정치에 기여 및 관여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퐁파두르 부인은 단순히 미모로만 왕의 환심을 산 것이 아닌 왕의 친구이자 측근으로서 수행한 역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루이 15세는 다른 정부들과는 다르게 그녀를 매우 신뢰하고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자 연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여왕과도 관계가 좋았으니 말입니다. 


그녀의 수많은 재능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지경인데요. 글도 잘 쓰고 춤도 잘 추고 남다른 안목에 집도 잘 사고 팔고 인테리어 능력부터 하여튼 금손이에 준천재에 가까운 매력이 넘치는 여성임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왕의 정부로만 평가 받기에는 가진 재능이 너무 충만했던 거죠. 왕실과 연계해서 그녀가 한 일을 보자면 예술 후원자, 관리자, 기획자, 홍보 담당자 등 거의 국무 총리급으로 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 죽음 앞에 눈물을 마지막 선물로 바친 루이 15세


그녀는 타고난 능력에 비해 건강이 좋지 않아서인지  1764년 43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맙니다. 그녀의 죽음 앞에 왕이 엄청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장례식날 비가 내렸고 왕은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이 눈물이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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