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모스보다 빛났던 60년대 최고 모델 페넬로페 트리

 페넬로페 트리는 미국 태생의 영국에서 자란 모델로서 1960년대를 대표하던 패션 모델입니다. 모델이라기보다는 아티스트 혹은 행위 예술자에 가까울 정도지만요. 그녀의 짧지만 강렬했던 모델 생활 뒤에는 파란만장하고 화려한 뒷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찬란하면서 공허했던 삶의 스토리를 살짝 올려봅니다. 그녀의 외모보다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흥미로워서 말입니다.

패션잡지가 아닌 아트 잡지 시대의 스타 페넬로페 트리


페넬로페 트리


패션 잡지가 상업적인 저질 잡지로 전락하기 이전인 1960년대 패션지는 아트 그 자체였습니다. 모델도 사진 작가도 예술성이 남달랐는데요. 창조적 성향은 물론 예술적 기술적으로 구현해내는 솜씨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패션지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고 현대인들이 아직도 이곳에서 영감을 얻고 가는 모양입니다. 
 
모델들도 한결같이 표현의 대가들이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공이 있던 인물 중 한명이 바로 페넬로페 트리입니다. 그녀는 90년대 영국 출신의 최고 톱모델 케이트 모스와 비슷한 외향으로 십대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마치 케이트 모스에게 열광했던 것처럼요.


상류층 출신의 모델이 주류였던 60년대 배경

게다가 명문가 자제들 출신의 모델들도 비중이 컸습니다. 워낙에 모델이 드물던 시대였던터라 이 바닥으로의 진입 경로가 알음알음 부유층에게 알려져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인지 몰락한 러시아 귀족 가문 출신이거나 아니면 사교계 명사부터 귀족 왕족 등의 프로필을 가진 모델이 잘 나갔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당대 최고의 신기술인 카메라로 담고 싶은 인물이라면 배경도 좌우했겠죠. 그중에서 페넬로페 트리는 갑오브 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집권하던 윈스턴 처칠의 최측근이었고 어머니는 미국을 대표하는 부자에 사교계 명사였다고 합니다. 물론 이 부부는 트리가 2살 때 헤어지지만 그녀 엄마는 재혼도 엄청 성공한 사람과 하니 트리의 사돈의 팔촌에 친부에 계부에 주변인 모두가 화려한 상류층 일색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트리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방치된 채 지낸 모양입니다. 본인 입으로도 자신은 가난했고 부자였다고 말하는데 맞는 말 같습니다. 그녀는 부모가 너무 잘난 덕에 부유한 고아 신세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러다보니 사춘기 시절 절정의 야생마 같은 기질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성정체성도 불분명해서 양성애자라고 했다죠.

아버지의 반대 속 히피가 된 트리

트리의 모델 데뷔를 이런 막강한 집안에서 찬성했을리가 만무였습니다. 13살 어린 나이에 화보 사진을 찍었으니 그녀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면서 출간 금지를 엄포했습니다. 하지만 패션계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녀가 예뻐서라기보다 그녀가 튀어서 매력이 있던 거겠죠. 그녀의 무한 튀는 본성은 강화되었고 17세 아버지의 설득을 이끌고 트리를 빼낸 사진 작가 베일리는 그녀를 데리고 7년간 동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히피 소굴에서 살면서 트리는 자본주의 돼지라고 놀림을 당하면서 가난 코스프레를 하며 살게 됩니다. 

이런 장면은 60년대를 그대로 재현한 드라마 매드맨이 연상됩니다. 드라마 속 광고 회사 사장의 외동딸이 히피를 자처하며 부유함과 담을 쌓고 사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아마도 페넬로페 트리 스타일을 차용한 것 같습니다.

hot hot hot smart smart smart

존레논은 톡톡 튀는 트리를 보고 핫핫핫 스마트스마트스마트라고 말했다죠. 한국식으로는 열정적이고 똑똑하다고 본 모양입니다. 영악하다고 볼 수도 있고요. 이래 저래 예쁘단 소리는 안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녀의 괴랄한 이미지는 그녀의 사적 배경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바람직한 귀엽고 깜찍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모델이었습니다.


트리의 여드름 발명

페넬로페 트리의 여드름



망나니처럼 날뛰던 트리는 너무 많은 여드름 발명 때문에 더이상의 인싸 활약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릅니다. 여드름이 악화되어도 사진으로 커버는 가능했겠지만 그녀 자신이 위축되어 견딜 수가 없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십대 모델 생활은 여드름과 함께 끝을 맺기 시작합니다. 70년대 초에 모델 생활과 히피 생활을 청산한 그녀는 자신감 결여로 인해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길 원합니다.

인류와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

모델로서 수명이 다한 트리는 동거하던 남친 베일리와도 헤어지고 업계와 거리가 먼 호주로 이사합니다. 그곳에서 미약하나마 코미디 영화도 찍었으나 반응은 그저 그랬겠죠. 연애도 합니다. 비치 보이스 멤버 출신 리키와 결혼하고 이혼도 하고요. 그러다 정신분석학자와 만나서 두 자녀를 두고 안정을 찾게 됩니다. 으레 좋은 출신 자녀들은 방황 끝에 제자리를 찾아 누구보다 건실하고 멋지게 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인류애나 종교에 심취하는 데 이게 마치 수순 같기도 하고요. 


예쁘지는 않았던 은둔의 잇걸


트리의 화보 사진



그녀에 대해 아무리 멋진 말로 치장해도 과거 그녀 사진을 보면 그냥 예쁜 구석은 보이지 않고 행위 예술자처럼 보일 뿐입니다. 아무튼 그녀는 그 시절을 풍미한 최고의 잇걸이었다고 하니까요. 치명적인 여드름 발병 이후 그녀는 일련의 우여곡절끝에 은둔자로 살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인류학과 종교학에 심취하면서 청소년을 위한 소설도 쓰고 자선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케이트 모스와 버버리 광고도 찍고 나이 환갑에 화보도 찍었으면서 세속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는 양 지적이고 헌신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성장 배경을 보면 근사한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헨리 제임스 소설 여인의 초상화 속 주인공처럼 가난하고 부유한 소녀였다고 했다는데요. 이 럭셔리한 가문의 방치된 외동딸 스토리를 보면서 왠지 90년대 한국 인디 밴드 삐삐롱스타킹의 이윤정이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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