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왕세자의 두 번째 부인 카밀라 파커의 증조 할머니 엘리스 켑펠 스토리
제목이 너무 긴 것 같은데요. 영국 왕실은 본처보다 후처에 올인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긴 합니다.
오늘은 흥미로운 영국 왕실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엘리스 켑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00년대 초반 사교계 명사 엘리스 켑펠은 에드워드 7세의 오랜 정부로 더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찰스 황태자의 정부였다가 결혼한 카밀라의 증조 할머니로 더 유명하다고 합니다. 대를 이어 정부를 한 업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즉, 찰스 황태자 고조 할아버지와 카밀라의 증조할머니가 바로 에드워드 7세와 엘리스 켑펠이라는 사실.
엘리스 켑펠과 카밀라 미모 대결
이미지상으로 보면 할머니 미모가 카밀라 미모보다 월등히 앞서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집안은 무슨 매력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요. 엘리스 케펠은 밝고 사교적이며 에너지가 넘쳤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던트레스 성에서 자라며 파란 눈에 가냘픈 허리, 갈색 머리에 엄청 큰 가슴으로 당대 최고 미인 중 한명으로 사교계 최고 인기 스타였다고 합니다.
수많은 구혼자들 가운데 그녀는 1888년 군인 신분의 조지 케펠과 결혼하였지만 1897년 당시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와 결혼한 에드워드 7세를 소개 받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에드워드 7세의 수많은 정부 중 한명이 됩니다. 한국식으로 첩이 된거죠.
에드워드 7세로 부터 La Favorita란 애칭을 부여 받았는데요. 가장 총애하는 애첩이란 뜻 같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은 엘리스 켑펠
이들의 관계가 공공연하게 소문이 나더니 1901년 초 빅토리아 여왕 서거 후 왕이 되자 대놓고 데리고 다닙니다. 왕의 총애를 받은 터에 국왕의 수석 재정 고문에게 경제 자문도 받고 해서 엄청 부자가 되었고요. 여왕 대접 받으면서 사는 것처럼 살았던 모양입니다.
둘 사이에 아이도 낳았다는 말이 있지만 비밀리에 부쳐진 것 같고요.
엘리스 켑펠 사망
1910년 그가 사망하자, 당연히 엘리스는 찬밥 신세로 전락합니다. 이후 그녀는 가족들과 2년 동안 여행을 하다 런던으로 돌아와 다시 사교계 호스티스로 활약합니다. 이후로 그럭저럭 지내다 이탈리아 피렌체로 이주하고 1947년 9월 11에 사망하여 집 근처 묘지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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