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 요약(b.c 3500~1800년대 사실주의까지)
1) 이집트 미술 (B.C 3500-500)
기원전 5000년경에 이집트, 인도, 중국 등지에 흐르고 있는 나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인더스, 황하 등의 비옥한 유역에서 각기 거창한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선사시대로부터 유사시대로의 생활양식의 전환이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3000년간 지속된 이집트 미술은 그리스 인간 중심의 미술 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정확한 부분묘사와 균형있는 신체비례를 보여주며 그들의 질서감각과 기하학적 규칙성을 보여주었다.
이집트인들의 삶과 죽음의 관계에 무척 밀접하다. 특히 사후세계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사지의 육체를 떠나 따로 삶은 누린다고 믿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집트의 미술은 초시간적, 영속적기능을 하게된다. 산자 보다는 죽은자를 위한 문화적 특성으로 미술 작품 또한 영속성이 담겨있다. 관련한 예로 피라미드가 있다.
2) 메소포타미아 미술
기원전 3500년경에서 3000년에 걸친 기간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낀 비옥한 땅에서 수메르인들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동한다. 수메르의 도시국가는 모두가 신의 소유로서 신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었다. 그래서 신을 대신하고 있는 신관이 모든 국가의 행정을 통치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신전을 중심으로 한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수메르의 조각은 건축보다 많은 양의 작품을 아직까지 남기고 있는 데 그것이 바로 돌로된 소형 인물상군이다. 수메르의 조각가는 금속이나 나무를 재료로 하여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이집트 미술가와 비교하여 훨씬 규칙에 속박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3) 그리스 미술 (B.C 7 - 4)
그리스 미술에서는 사물을 보는 시점이 이전의 왜곡된 방식이 아닌 올바른 방식으로 발전하여 이집트 미술에서 보이는 평면성에서 벗어나 공간감을 얻게 되었다. 공간감의 획득은 형상이나 인물 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설득력 있게 전달할수 있도록 하였고, 이것을 그리스 미술의 서술적 기능(Narrative function)이라 한다. 그리스 미술을 크게 아르카익기, 고전기, 헬레니즘으로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아르카익기와 고전기를 같이 묶어서 고전기라 하기도 함.
아르카익기(B.C 7-5)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미술이 극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미술의 서술적기능이 태동한 시기이다. 또한 원시적인 신들에 관한 전설이나 신화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함으로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시기이다. 따라서 기하학, 자연과학, 철학 등의 학문이 아울러 발전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미술로 도리아식 신전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을 들 수 있다.
고전기(B.C 5-4)
페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하여 정치적 번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미술가들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후기 그리스 미술의 특징으로 들 수 있으며 대표작품으로 갸날픈 기둥에, 곡선이 가미된 기둥머리를 지닌 이오니아 양식으로 건축된 <에렉테이움 신전>이 있다.
헬레니즘 미술(B.C 4-A.D 1)
알렉산더 제국하의 미술양식을 말한다.
소아시아와, 인도국경, 이집트까지 영토확장을 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서방의 문화가 혼합되었고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전의 기둥양식 보다 훨씬 강하고 화려한 인상의 코린트식 건축 양식을 들수 있다.
또한 조화와 균형보다는 제국의 위용에 걸맞는 강렬한 극적효과, 거칠고 인상적인 효과에 주력하였다.
격렬함과 긴장감으로 가득한 리시포스의 <라오콘군상>은 이러한 특징을 잘 나타낸다.
대표작품으로 사모트라케섬의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상>을 들수 있다.
4) 로마 미술
그리스 패권을 둘러싼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헬레니즘 제국과 카르타고의 싸움이 치열할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 공화국이 그리스인들보다 정치력과 군사적으로 우세한 힘을 기르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리스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로마인들의 그리스 세계정복은 평소 그리스 미술에 절대적 동경을 가지고 있던 로마인들에게 그리스의 미술을 단번에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의 우수한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로마인들은 국제적 성격을 띤 미술을 전파하게 된다.
그리스와 로마 미술이 매우 유사하게 보이는 것은 로마 시대때 활동하던 미술가들이 대부분 그리스 출신이던가 거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로마인들은 그리스 시대의 미술품을 복제하거나 수집하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술을 그대로 복제한 것만은 아니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리스 형식을 변형하였다.
5) 중세 미술
중세는 초기 500년동안은 전쟁과 약탈, 혼란한 정치가 계속되는 일종의 암흑시기(Dark age)였다. 그리고 예술은 기독교 교리전달의 보조수단이라는 신(神) 중심의 인간관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였으므로 예술에 있어서도 암흑시기였다. 중세는 초기 기독교,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미술로 분류된다.
초기 기독교
미술은 단지 문맹자들에게 신의 섭리와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수단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그들은 신(神)적이고, 영원하며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미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미술가의 재능은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 이므로 당연히 신에게 바쳐져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이시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뚜렷히 통일된 하나의 양식이 나타나지 않은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비잔틴 미술
4세기로부터 5세기에 걸치는 동안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의 미술이 상대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정치적인 몰락을 겪은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에서, 6세기에 이르러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그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 데, 이를 비잔틴 미술이라고 부르고 있다.
로마네스크 미술
11세기 후반에 유럽전역에서 일어난 로마네스크 미술은 “교회의 승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전역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며 정치,경제,사회의 일반이 교회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대 로마의 건축양식과 흡사한 교회가 많이 건축되었으며, 단단하고 육중한 모습의 석조건물로서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전투적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각이나 회화는 중세초기에 비하여 비교적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우나 여전히 교리전달의 보조수단이므로 팀파늄 같은 교회의 내부장식에 이용되었다.
고딕 미술
12C 말 프랑스 북부에서 발생한 미술양식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세계를 가시화 시킬수 없으므로 인간의 것을 충실히 나타내려는 시도(유비법의 붕괴)가 생기면서 원근법, 인체묘사, 형태등에 관심을 쏟아 이후 르네상스 발생의 초석이 된다. 로마네스크의 둥근 아치와는 달리 뾰족한 첨두형 아치가 특징이다. 또한 로마네스크 교회건축물과는 대비적으로 가느다란 석재기둥 및 유리(스테인드 글라스)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내부가 밝고 넓어지게 된다. 대표적 건물로 프란체스코 교회를 들수있다.
6) 르네상스 미술(1400-1600)
르네상스는 부활(復活), 재생을 뜻하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 번영을 꿈꾸며 시작되었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배경을 보면 첫번째, 이탈리아에선 귀족계급과 부유한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두번째, 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등 고전시대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 번째, 도시의 자부심과 사유재산제가 잘 발달되어 예술에 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는 것등이다. 중세 봉건영주, 귀족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권리와 능력을 자각한 시민계급의 등장은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낳았고, 이는 중세를 지배하던 신중심의 시선을 인간중심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피렌체의 메디치가 처럼 부를 축적한 상인계급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여 미술의 새로운 후원자가 되었다.
초기 르네상스(Quatrocento, 1400년대)
현실적, 객관적 정확성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그림전체의 조화로운 구성에는 아직 소훌하였다. 화면속 대상 개체의 사실적인 묘사에만 주력하였으므로 개체는 날카롭고 명확한 윤곽선으로 도려지게 되었다. 격렬한 동세를 하고 있는 소재들은 고전작품에의 제재를 따온 것으로 파악된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이러한 아직은 미숙한 르네상스의 미술의 특징을 잘 알수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도나텔로(1386-?), 보티첼리을 들수 있다.
전성기 르네상스(Cirquecento, 1500-1520)
이성적 규칙을 통한 객관적인 정확성과 조화와 균형이라는 미의 이념이 잘 구현된 황금기다. 다른 어떤 세기보다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으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들 수 있다. 원근법과 명암법 등 서양미술의 수학적 이론이 정립된 시기이다.
매너리즘(Mannerism, 1520-1600)
본래 후기 르네상스라 불렸다.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의 경향들을 이르는데 흔히 평가절하되어 온 경향이기도 하다. 즉 인위적이고 기교적인 성격이 강하고 형식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전대의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했다고 간주되어 창조성에서 의심을 받았다. 전반적인 그림들에서 느겨지는 불안감, 신비감, 몽상적인 분위기, 기괴한 배경, 과정된 인체비례에서 시대정신의 한 면의 표출로 보기도 한다. 특히 파르미지아노(1503-1540), 틴토렛토(1518-1594), 코렛지오(1489-1534), 엘 그렛코등이 대표적인 매너리즘 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양식적 특징으로는 인체의 장신화, 차갑고 선명한 색조, 표면처리의 매끈함, 원근법의 과장, 비논리적인 공간배치 및 대가그림의 일부 차용 등을 들수 있다. 반면에 긍정적인 측면을 들수도 있다. 이전 르네상스 양식의 이성적 접근은 미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며, 새롭고 색다른 감성적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매너리즘은 긍정적이다. 이러한 점은 이후 바로크 미술의 계기가 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파르미지아노의 와 엘 그레코의 , 틴토레토의 을 들수 있다. 매너리즘은 예술적 기교에 치우친 타성적 예술이다.
7) 바로크 BAROQUE(1600-1750)
1600년부터 1750년 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르네상스의 이성적 규칙에 의한 지나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부터 발전한 미술양식을 뜻한다. 바로크는 포르투칼어의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으로 르네상스가 지닌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해 장식이 지나치고 과장된 미술양식에 대한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혹은 르네상스가 지니고 있는 고전적인 균형, 조화의 세계에 비하여 유동적이고 강렬한 남성적인 감각이 강조되어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 카라밧지오, 베르니니, 루벤스, 램브란트 등을 들 수 있다.
8) 프랑스식 고전주의(1700년대 중반)
17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풍요롭고 강력한 국가였다. 그 결과 예술의 중심지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파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데카르트의 합리론적 철학의 영향과 루이14세에 의한 정치적, 경제적 안정은 프랑스를 바로크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독자적인 양식을 갖도록 하였다. 대표적인 작가로 니콜라 푸생을 들수 있는데 그의 작품의 특징은 감상보다는 지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구도나 형태만이 강조되고, 색채는 아에 뒷전에 밀리게 되었다. 영웅적인 인물들은 일반화 되었으며, 동작은 조각처럼 굳어있다.
9) 로코코 ROCOCO(1723-1774)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 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조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소품위주로 제작되었다.
10) 신고전주의(1750-1820)
로코코와 후기 바로크에 반발하고 고전고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함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나타난 예술양식, 고대적인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고 고고학적 정확성을 중시하며 합리주의적 미학에 바탕을 둔다. 신고전주의 예술은 형식의 정연한 통일과 조화, 표현의 명확성,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며, 특히 미술에서는 엄격하고 균형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 입체적인 형태의 완성등이 우선시 된다. 고대에 대한 관심은 18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폼페이와 헤리클라네움, 파에스툼등의 고대건축의 발굴과 동방여행에 의한 그리스 문화의 재발견등이 계기가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 전후 고대에 대한 동경이 사회 전반을 풍미하였다. 프랑스에서의 신고전주의 운동은 로코코 양식의 번잡스러움에 대한 일종의 반발, 루이 14세 시기의 그랜드 매너에 대한 향수, 푸생의 고전주의에 대한 회귀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11) 낭만주의(1800-1850)
간단히 말해 감성적 분위기의 작품들을 발전시켜 나간 형태라 할수 있다. 현실적인 사건을 주제로 다루기도 하고 이성의 규칙과 속박에서 벗어나 느낌에 따른 재현을 하였기 때문에 낭만주의로 불린다. 대표 작가로는 제리코를 들 수 있는데 사선구두와 명암의 극적대비, 어둠 침침한 단색조를 보인다. 낭만주의는 전시대의 미술들이 버리지 못했던 현상이나 사물의 재현이라는 모방론적 입각을 에술가의 감정이나 정서의 표현이라는 표현론으로 바꾸게데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예술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된다.
12) 사실주의 (1800년대 중반)
19C 이전까지는 자연주의로서 사실주의가 정의되어왔다. 그것은 성실하고 정확한 '자연의 모방' 더 나아가 그것의 '완벽한 이상화된 재현'으로서 사실주의 였다. 19C 이르러 사실주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사실주의 등장 이전의 낭만주의는 그 개념적인 면에서 대조가 된다. 낭만주의는 '감정'이 중요하고 따라서 작가의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결과 낭만주의 회화는 격정적이며 현실을 떠난 이상향을 쫒거나 이국적인 소재등에 깊은 관심을 회화로 표현한다. 표현에 있어서는 색채에 비중을 두고 화려하고 열정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현실을 떠난 상상력을 부추기는 소재는 따라서 시적이며 신화적인 주제를 취했다.
사실주의는 낭만정신에 전적인 반대 표명과 비판을 가한다. 특히 19C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쿠르베,도미에,밀레로 집약할 수 있는데, 이들의 공통관심사는 '현실을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쿠르베는 '천사를 보여주면 그리겠다'는 공언으로 사실주의의 개념을 대변하며 '상상력'으로 집약되는 낭만주의와는 대조를 보인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소재자체가 대조적인데서 비롯되어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메두사의 뗏목>은 내용 자체가 극적이며 등장인물 도 격정적인 자세의 불안할 정도의 공간배치가 나타난다.
반면 사실주의는 <돌깨는 사람>, <만종> 등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정적인 모습과 그들의 현실공간을 재현해서 단순하고 차분한 구성을 나타낸다. 19C는 과학과 기술의 태동 이성주의의 팽배를 부른 계몽주의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실증주의는 경험과 관찰에 입각한 과학적인 지식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시민정신에 평등사상을 고취하는데 역할하였고 민주사상에 이어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더 이상 고고한 가식적 주제가 아닌 평범한 삶의 세속성이 주제로 등장하는데 정신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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