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의 정석 잉그리드 버그만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 이전에 잉그리드 버그만이 있었다. 스웨덴 출신의 이 여배우는 키가 크고 코가 커서... 그리고 유럽 출신이라 다들 그녀가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했었다.

잉그리드 버그만 일대기





잉그리드 버그만은 1915년 생으로 독일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3살때 엄마 돌아가시고, 십대 때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친척 손에 자라야했다. 명문학교에 입학했지만 배우의 길을 택하고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카사블랑카'로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최고의 여배우로 인정받으며 잘 나가기 시작하였고, 훼밍웨이가 직접 잉그리드 버그만을 지목하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도 찍었건만...







이탈리아 감독 로셀리니의 작품에 반하여 출연요청하다 인물에도 반하게 되는데... 지적이고, 이국적이며, 우아하기 그지없는 완벽한 배우가 스캔들을 일으키자 1940년대 영화계는 일대 파란이 일어났고 잉그리드 버그만은 재기 불능일 것처럼 보였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인듯.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인 이사벨라 로셀리니.






 

잉그리드 버그만의 결혼 라이프


어쨌든 잉그리드 버그만은 로셀리니 감독과 재혼하여 쌍동이 딸을 낳고 둘 중 한 명은 엄마의 미모를 쏙 빼닮아 나중에 십 년 넘게 랑콤의 모델로 활약도 하였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이탈리아에서 찍은 영화들은 흥행에 실패하고 6년만에 헐리우드로 돌아가게 되는데...


<아나스타샤>로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타면서 다시 헐리우드 스타로 등극하지만 로셀리니와는 이혼행. 1957년 이혼 후 58년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1972년 유방암 선고를 받음. 1975년에는 또 이혼.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망


그리고 1982년 자신의 생일 파티 후 조용히 사망하였다. 여배우스럽게, 아니 여배우의 삶은 그래야 하는 것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향년 67세에 명을 다한 버그만. 그녀의 외모만 보면 거친 일생과는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사랑에도 충실했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지만, 특유의 방랑벽은 버리질 못하여 자식들과도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다고 하는 그녀.



생계형 배우로 돌아온 잉그리드 버그만



잉그리드 버그만이 다시 헐리우드로 복귀하게 된 계기는 재정 문제 때문이었다. 두 번째 남편 로셀리니의 연이은 실패에 빚에 허덕이게 되었고 생계형 배우로 살 수 밖에 없던 것. 역시 사랑만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는가 봄.


허나 고생 따위는 전혀 해 본적 없을 것 같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우아한 모습. 귀족적인 마스크가 이런 거구나 싶음. 어쩌면 지극히 고전적인 미인상이라 불릴 수도 있지만... 어떤 완벽한 여배우의 이상적인 모델상을 제시한 것 같은 느낌? 강인하고 활력 넘치는 북유럽 여성의 미국 성공기라니...


강직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유는 눈빛에 기인한 걸까... 20세기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꼽히는 로버트 카파의 연인이었다는데... 그의 영향 탓인가? 그녀는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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