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질투한 천재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생전 단 두 장의 앨범으로 1500만장 넘게 판매고를 올리고 그래미 어워드 총 6관왕에 오른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신이 질투한 천재 뮤지션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생전 능력이 특출하였다.

에이미 와인 하우스의 라이프 스토리


에이미 와인 하우스의 어린 시절과 성인 모습 비교



1983년 9월 14일 런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에이미 제이드 와인하우스이다. 어릴적부터 음악을 좋아해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특히 다이나 워싱턴, 토니베넷, 캐롤 킹 등 재즈 뮤직에 빠져 지냈는데
16살 때는 국립 청소년 재즈 오케스트라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노래 하는 게 좋았지만 가수가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심지어 직업이 될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데모곡을 부르다 싱어송라이터로 데뷔




에이미 와인 하우스는 학창 시절 동네 아는 오빠 정도 되는 19세의 닉이 대형 레코드사에 매니저로 있었는데 에이미를 불러 노래를 불러 보게 하고 데모곡을 만들었다. 그녀에게 곡을 써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곡을 써 본 적이 없고 시는 써 놓은 게 많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의 음악 인생이 펼쳐진다.

에이미 와인 하우스의 가족사


에이미 와인 하우스의 아버지는 윈도우 설치 관련업자였다가 후에 택시 운전사로 전업했고 그녀의 엄마는 약사였다. 그녀에게는 오빠가 한 명 있다. 그녀의 외삼촌은 프로 재즈 뮤지션이었고 그녀의 친할머니는 가수이자 잉글리쉬 재즈 섹스폰 연주자였다. 덕분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재즈와 밀접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그녀의 아버지 역시 프랭크 시나트라의 음악을 그녀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다.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는 듯했지만 에이미 아버지는 결혼한지 1년도 안 되어 외도를 일삼으며 집안일을 등한시했다. 그래서 그녀 엄마 홀로 자식들을 돌보며 경제를 책임져야했다. 어릴 때부터 고집이 세고 총명한 아이를 그녀 엄마는 감당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유약하게 일관했던 걸로 알려졌다.

에이미 와인 하우스 아버지는 그녀가 14살 때 집을 나갔고 그 뒤로 평범한 에이미에는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다. 정서적으로 불안감이 컸던지 이때부터 항우울제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녀의 엄마는 에이미가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걸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판단했지만, 에이미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아빠가 집을 나가자 본격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맞게 된다.


천성이 여리고 착한 본성인 에이미 와인하우스


심약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음악에 의존하였고 점점 일탈이 일상이 되면서 자신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내 얘기가 아니면 안 쓸거예요. 나만의 가사를 쓰려고 노력해요.”

에이미의 노래는 모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에이미는 자신에 대해선 겸손했지만 개성이 강했고 음악적인 자부심도 남달랐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뭔가를 덧붙일 필요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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