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트 피아프의 기구한 인생 스토리
프랑스의 국민 가수, 프랑스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에디트 피아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여성가수로 불렸다. 한국 광고 음악에도 등장했던 non, je ne retraite rien 만 들어도 에디트 피아프가 어떤 가수였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에디트 피아프의 라이프
에디트 피아프는 떠돌이 서커스 악단의 곡예사 아버지와 이탈리아 출신 3류 여가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순간부터 기구함이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에디트 피아프의 유년 시절
1915년 12월 19일 춥디 추운 겨울 날 에디트 피아프의 엄마는 빈민촌의 병원으로 향하던 중 길 한복판에서 그녀를 낳았다. 에디트 피아프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독일군에게 사살된 프랑스 간호사 이름을 딸 이름으로 썼다. 바로 에디트 조반나 가시오이라는 이름이다. 그리고 2개 월 후에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창녀촌에 살고 있는 알콜중독자 외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사라진다.
부모에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에디트는 3살 때 눈병을 앓다 실명하였으나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으로 7살 무렵 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워낙 영양이 부실하여 성인이 되어도 키가 142센티 밖에 안 되었다. 작은 키 때문인지 나중에 그녀는 피아프(piaf), 즉 참새라는 별명을 얻는다. 우리가 아는 그녀의 이름은 이름과 별칭이 함께 불리는 거였다는 사실.
학교 근처도 못 가 본 에디트 피아프의 삶은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를 따라 유랑하면서 생활비도 벌고 돈이 다 떨어지면 할머니와 지내던 고향으로 돌아가 여러 남자에게 몸을 팔며 연명했다. 그러다가 17살에 첫 아이를 출산했지만 아이는 두 살 때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
으레 천재적 감각을 가진 자들이 그렇듯 에디트역시 체계적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음악 실력 만큼은 출중했다. 타고난 미성을 물려 받은 것도 있지만 사람을 끄는 강력한 마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노래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건 세상 제일 가는 축복이 아닐까.
갑자기 살인 누명을 쓴 에디트 피아프
어쨌든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그녀를 알아보고 수렁에서 구해 준 클럽 사장 루이 루플레는 그녀에게 주급이 보장되는 자리를 제안하고 뭔가 풀리는 듯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얼마 뒤 살해를 당하면서 피아프는 졸지에 누명을 쓰고 잡혀간다. 다행히 얼마 후 진범은 잡혔고 그런 사이 그녀의 명성이 알려져 노래로 자리 잡는 계기가 마련된다.
노래는 성공했지만 인생은 여전히 불행의 구렁텅이
그러나 에디트 피아프는 노래로 성공은 했어도 인생은 계속 불행의 구렁텅이였다. 이브 몽탕을 비롯한 가수 자크 피르스, 테오 사라포 등과 결혼 및 재혼을 하고 교통 사고를 네 번이나 겪었고 가장 사랑했던 남자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남친의 데이트 폭력은 물론 지난한 연애 속에 마침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지만 그녀의 병세는 짙어졌고 결국 48세로 생을 마감하는 비운 오브 비운의 여인이 아닐 수 없다.
독특한 발성법을 연구한 에디트 피아프
그녀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면서 좀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체계적으로 노래를 배우진 않았지만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있어서 목소리를 최대한 울려 퍼지도록 하기 위해 독특한 발성법을 연구하고 개발했다는 점이다.
입 안의 공명 공간을 최대한 사용해 밖으로 내뿜는 독특한 발성법인데 거리 가수로 생활하면서 부단히 훈련하면서 자신만의 색상을 만들었다는 면에서, 타고난 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부단한 훈련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길거리 무심하게 준비없이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은 마음이다.
완벽한 가수로 거듭나기까지
에디트 피아프는 술로 연명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싱어송라이터 레이몽 아소를 만나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할 기회를 마련한다. 그에게 일련의 교육을 받으면서 작사, 작곡하는 실력도 갖추게 되며 방황은 사라지고 즐거운 마인드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고. 레이몽은 그녀를 위해 싼 티 나는 손동작 및 발음 부터 표정까지 교육시켰고 마침내 완벽한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에디트의 명성은 미국까지 퍼졌고 hymne a l l’amour 는 미국에서 만난 운명적인 사랑 복싱선수 마르셸이 비행기 사고로 추락사하면서 그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곡이다.
언제나 사랑에 목말랐던 에디트 피아프
어릴 적부터 사랑이 부족했던 탓인지 남녀간의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에디트는 사랑이 절대적이었다. 노래를 못 하면 살 수가 없고 죽음보다 외로움이 더 무섭다고 말하던 에디트는 몸도 정신도 피폐해진 상태에서 마지막 사랑이 찾아왔다. 가수가 되고 싶던 25세의 잘생긴 이발사 테오파니스다. 에디트와는 21세 차이가 났다. 그녀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제자로 받아주었고, 테오는 아프고 지친 에디트를 진심으로 보살폈다.
아들뻘 남자를 유혹한 늙은 여우라고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에디트는 테오와 결혼을 강행했고 에디트는 그와 결혼한지 1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 테오 역시 에디트가 떠난 지 7년 만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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