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을(멀리 떨어져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셀 수도 없이 많다.(31p)
*타국에서 발생한 재앙을 구경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현대적인 경험이다.(39p)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진이 가장 자극적이다.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것의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 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사진은 인용문, 그도 아니면 격언이나 속담 같은 것이다.(44p)
*사진에는 두 가지 모순된 특징을 하나로 묶어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진은 애초부터 객관적이라는 공인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사진은 언제나 특정한 시점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진은 현실을 증명해 준다. 사진에 찍힌 누군가는 틀림없이 그곳에 존재했던 인물인 것이다...(48P)
*예술적 기교가 아니라, 증거품으로서의 중요성이기 때문이다..... 예술적으로 말하자면, 도드라진 재주를 부리지 않은 사진일수록 훨씬 더 조작된 것이라고 여겨지며...(49p)
*그리고 이 사진들을 둘러싼 그릇된 이해, 그릇된 기억, 이데올로기적 용도가 장차 뭔가 새로운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흔히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둘 경우, 사진이 말해주는 것은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52P)
*기억 자체의 필요에 따라 이미지를 뒤바꿔놓는다.(53P)
*각 사진들에‘창조자’가 있다는 사실, 각 사진은 그 누군가의 관점을 재현할 뿐이라는 사실이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55P)
*사진 작가의 국적은 아무래도 좋다.그/그녀는 전세계를 활동 무대로 삼으니까. 사진 작가는(무수히 많은 전쟁중에서도)특히 매우 중요한 전쟁을 가장 우선하는 행선지로 삼아 그 전쟁 곁에서 살아가는 일종의 방랑자였다.(59P)
*움찔거린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쾌락이다....(67P)
*그렇지만 실제의 공포를 근접 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감이 존재한다. 아마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한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를 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런 고통을 격감시키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사람(즉 그런 사진이 촬영됐던 군사 병원의 외과의사)이나 그런 고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나머지 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68P)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을 뭔가 개탄할 만한 일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멈추게 해야만 할 일로 재현하는 행위도 이미지의 역사에서 특정한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68P)
*전쟁의 참화가 보여주는 병적인 잔인함은 보는 사람을 자각시키고 분노하게 만들며, 감정에 상처를 입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처럼, 고야의 예술도 도덕적 감정과 슬픔을 둘러싼 역사의 분기점인 듯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독창적이며, 보는 사람들에게 큰 노력을 요구한다.(71P)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74P)
사진은 뭔가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75P)
*카메라는 역사의 눈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아마도 브래디일 것이다. 즉 리얼리즘이라고 알려져 있는 주제와 동맹을 맺게 됐다. 얼마 안 있어, 이 주제는 사진작가들보다 소설가들에 의해서 더 많이 옹호 받게 될 것이었다.(82P)
*로베르 두아노는 1950년 ‘라이프’를 위해서 자신이 찍은 사진, 그러니까 젊은 남녀 한 쌍이 파리 시청 근처의 보도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이 일종의 순간 포착이었다고 명확히 주장한 적이 결코 없었다. 먼 훗날 40여 년이 지난 뒤 일당을 받고 고용된 한 쌍의 남녀가 두아노의 지휘 아래 입을 맞췄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이 사진이야말로 고이 간직해야 할 낭만적인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방심 속에서 사진작가에게 찍히기를 바랬던 것이다.(87P)
*그토록 많은 사진들이 그 순수하지 못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증거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역사적 증거들이 그렇듯이 말이다.(90P)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곧 사진을 찍는 행위인 것이다.(104P)
*현대의 희망, 현대의 윤리적 감수성에 중심이 되는 것은 비록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은 탈선이며, 비록 얻기 어렵긴 하지만 평화는 규범이라는 확신이다.(114P)
여기서 중요한 점은 꼼꼼히 궁리해서 그려질 그 이미지들이 지나치게 메스꺼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상세하면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언했듯이 부당한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품게 될 감정이 연민이라면, 연민은 도덕적 판단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비록 비극적인 불행을 그린 드라마에서는 원래부터 공포와 연인이 쌍둥이일지는 모르나, 흔히 공포는 연민을 희석 시키는 듯하다. 그러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예술가의 시선이라면 말 그대로 냉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들이 그린 전쟁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야 하며, 바로 그 끔찍함 속에 매력적인 아름다움이 놓여 있는 것이다. (115P)
*참회의 풍경도 풍경은 풍경이다. 황폐함 속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이 병적인 완곡어법 뒤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불명예스런 관념이 똬리 틀고 있다... 사진은 그 무엇이 됐든지 간에 피사체를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술 자체가 뭔가를 변형시키는 작업이긴 하다.(116P)
*사진은 일종의 연금술로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받는다.(125P)
*말로 된 표어보다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의 정서를 훨씬 더 구체화하는 것이다.(130p)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기억하기’라고 말하는데, 결국에 가서 이것은 일종의 허구가 된다. 집단적 기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적 죄의식 같은 그럴싸한 관념들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집단적 교훈은 존재한다... 우리가 집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131P)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찾아가기를, 그리고 새롭게 되살리기를 원한다.(133P)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되어버렸다.(135P)
가슴이 미어질 듯한 사진들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줄 수 있는 능력을 좀체 잃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사는 우리가 뭔가를 이해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137P)
*불행에 대한 사랑,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147P)
*신화속의 마르시아스가 아니라.. 황홀경에 빠진 듯이.. 나약함에 맞서 자신을 단련하기, 자신을 좀더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기, 도저히 구제 받지 못할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같은 요구 말이다.(149P)
*...종교적 사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유가 바로 이와 같은 고통의 관점, 즉 타인의 고통에 관한 관점이다. 이 관점은 고통을 희생에, 희생을 정신적 고양에 결부시킨다. 따라서 고통을 뭔가 잘못된 것이라거나 불의의 사건, 혹은 일종의 범죄로 여기는 감수성, 즉 고통을 고쳐야 할 무엇, 거부해야 할 무엇,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엇으로 여기는 현대의 감수성에는 낯설기 그지없는 관점이다.(150P)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150p)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들은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151P)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우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수동성이다. 냉담한 것으로, 혹은 도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무감각한 것으로 묘사된 상황은 따지고 보면 감정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분노의 감정, 좌절의 감정으로 말이다.(154P)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154P)
*사진이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 첫 번째 사고방식은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것들을 대중들도 주목한다는 사고방식이다. 현실적인 것.(155P)
*두 번째 사고방식은 방금 묘사했던 사고방식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사고방식으로서, 이미지로 뒤덮인 세계에서는, 아니 그... 그 무엇인가의 영향력이 점점 떨어져 간다는 사고 방식이다. 우리는 완전히 무감각해져 버리는 셈이다... 사진이 주는 충격이 점점 줄어든다는 무슨 증거가 있을까. 모두 방관자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문화가 잔혹한 행위들을 찍어놓은 사진들의 도덕적 힘을 무효화해 버린다는 무슨 증거가?(156P)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미지는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157P)
*현대의 삶이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일련의 공포로 이루져 있으며 사람들이 이런 공포에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는 주장은 현대성에 대한 비판, 그러니까 현대성만큼이나 오래된 비판의 근간을 이루는 사고방식이다.(158P)
*우리는‘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각각의 상황은 스펙터클로 변신해야만 우리에게 현실적으로(즉,흥미롭게)다가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스스로 이미지가 되기를, 즉 유명인사가 되기를 갈망한다. 이렇게 현실은 위신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재현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한 재현만이 말이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에 수긍하고 있다.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겪을 바를 미리 내다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성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161P)
*아마도 사람들은 사색보다는 기억 자체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듯하다. 상기하기는 일종의 윤리적 행위이며,...... 무정함과 망각은 함께 가기 마련인 듯하다..... 즉 화해하려면 기억이 불완전하고 한정되어 있어야만 한다.(168P)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우리‘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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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된 것일 뿐인 공유된 경험으로 인하여 얼마나 피곤하게 살고 있는가에 고민이 깊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현실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필체로 가독성 높게 읽은 책이다.
소설이 아닌 사실을 다룬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고.
흥미롭게 읽다보니 곳곳에 줄을 치며 읽긴 했는데 정확하게 의미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그것은 보편적인 상식을 깨는, 그러면서도 간극이 크지 않다보니 판단에 신중함을 요한 게 아닌가 싶다.
수전 손택은 고통 받는 타인의 사진을 인용하며(주로 전쟁 사진) 그것의 진위를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형식을 제시하였다.
호소하는 형식이 강조하거나 공포 소구로 업박하지 않은 탓에 간과하기 쉬울 뻔했다.
그러나 수전이 그런 방식을 택한 깊은 뜻을 알 것 같다.
연민보다는 성찰의 기회를 주고 스펙타클한 사회에서 행동하는 의식을 일깨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전쟁을 반대하는 울프가 제기한 '우리'는 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열한 전쟁에 명목상 관심을 보이는 척하는 사람들만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고
울프가 말하는 전쟁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며 이름 모를 희생자들의 이미지들이라고 한다.
논쟁의 핵심에서 벗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아직도 가족들은 슬픔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 모두가 슬퍼했고 그들을 연민했지만 '우리'를 앞세워 얼마나 많은 농간이 있었는지도 헤아려 볼 일이다.
우리라 자청하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 앞에서 연민을 자아내기 위해 지나치게 선동적이진 않았나 싶다.
지금도 물론 현재 진행형이다. 이것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일일까.
나는 침묵할 뿐이지만 세월호 앞에 정부를 비난하고 그들을 앞세워 선동을 하는 '우리' 역시 신뢰할 수 없다.
개인의 침묵은 어디에다 호소를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수잔이 말한대로 현대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통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셀 수 없이 많다.
그것을 통해 개인이 느낀 감정은 연민과 나는 그렇지 않은 일종의 안도감 그리고 뒤를 이어 찾아 온 성찰의 시간들이 기이하게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수전은 타국에서 발생한 재앙을 구경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현대적인 경험이라고 하였다.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 미디어란 매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방송 채널마다 다른 양상을 보였다.
비단 그 사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사건들이 사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만 같다.
엄중하게 객관적인 사건만을 보도한 매체가 한 군데라도 있던 가 싶다.
한쪽에서는 옹호하기 급급하고 한 쪽에선 선동하는 데 온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나.
그들 모두 팩트가 아닌 걸 보도하진 않았다. 각기 담아 둔 프레임이 달랐을 뿐이다.
대중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걸려 분노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똑같은 연민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고통 받는 타인을 위해 울어주고 공감해 준 것 이외에 진정한 성찰이 있었나 싶다.
차라리 순수하게 그렇게만 했으면 개운하게 끝났겠지만 지금까지도 정치적으로 화두가 되어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는, 지난 일련의 커다란 사건 등을 겪으며 거의 흡사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던 뻔뻔한 반응에 불과했다.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수전은 얘기한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타인의 고통에 우리가 연민 빼고는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변화를 시도했느냐에 관한 환기를 시키고자 함이다.
즉 우리가 사진이란 매개체를 통해 공동의 경험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보기만 하는 것일 뿐 직접 경험은 연민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수전이 말하고 싶은 얘기는 현대의 희망, 현대의 윤리적 감수성에 중심이 되는 것은 비록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은 탈선이며, 비록 얻기 어렵긴 하지만 평화는 규범이라는 확신이다.
예술가들이 소위 특정 '우리'를 지칭하는 자들이 편협한 시선으로 고통을 희석시키기 위한 연민을 유발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닌 냉정하고 이성적인 잣대로 직시해야 하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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